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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복을 전달하는 여자

: 김치 만둣국을 먹으며

by 채움




#1.

어릴 적부터 김치로 만든 음식을 좋아했다.

아빠의 입맛을 닮아서인지 매콤하고 짭조름한, 걸쭉한 음식에 익숙했다. 그중에서도 김치를 베이스로 한 음식이라면 뭐든 오케이였다. 오죽하면 김치찌개, 김치볶음밥이 소울푸드 1,2위를 다툴까.


김치만두도 예외는 아니었다.

얇게 빚은 만두피에 잘 익은 김치를 송송 다져 넣고 찜통에 갓 쪄낸 만두.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그것의 붉은 속살이 모습을 드러낼 때면 절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식초와 고춧가루를 곁들인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아삭한 김치의 식감과 매콤한 풍미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미미(美味)" 다!


김치만두는 군만두로도, 전골로도, 국물요리로도 손색이 없다.

특히 만둣국처럼 국물에 빠진 만두는 속이 자박하게 불어나, 한입 베어 물면 감칠맛이 입 안에서 춤을 춘다.

만두소가 고기냐 김치냐에 따라 국물 맛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다.


이런 이유로 나는 떡국보다 만둣국을 더 찾게 되었고, 결혼 후 새해 첫날 만둣국을 먹으며 조용히 한 해 복을 빌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첫 전통이 된 것이다.




#2.

깊어가는 겨울, 눈까지 내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 절로 떠오른다.

직접 만두를 빚을 시간적 여유도, 경험치도 부족하지만 나에게는 새벽 배송 '로켓프레시'가 있다.

만둣국의 베이스가 될 사골 육수를 끓이며, 주문한 김치만두를 꺼내 해동시켰다.


이번에는 특별히 떡도 함께 넣었다. 아이 백일잔치 때 서비스로 받은 가래떡이 생각나 기회다 싶어 넣어본 것이었다. 슴덩슴덩 썰어 넣은 가래떡은 천편일률적인 시판 떡국 떡보다 모양도 제각각이고, 훨씬 쫀득하니 맛있었다.


만둣국을 끓이며, 어릴 적 친척 집에서 만두를 빚던 날이 떠올랐다.

'만두는 마음이다', '마음이 예쁘면 만두도 예쁘게 빚어지는 법'이라는 어르신의 말씀과 더불어 '만두를 복주머니라 부르는 이유'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단지 모양이 복주머니를 닮아서만은 아니었다.


만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중 하나이다. 만두소에 들어가는 당면, 채소, 두부 등은 물기를 완전히 짜내고, 잘게 다지거나 으깨야한다. 만두피 또한 너무 얇으면 찌는 과정에서 터지기 쉽기에, 적당한 두께로 밀어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야 겨우 만두 하나가 완성이다. 그리하여 정성껏 빚은 만두 하나엔 정말이지 복이 왕창 담겨 있는 셈이다.




#3.

그날 밤, 따끈한 만둣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임신한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쌍둥이를 품은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와 움직이기 쉽지 않을 텐데, 늘 환하게 웃으며 씩씩하게 지내고 있다.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밤.


임신 후기로 접어들면 숨 쉬는 것은 물론 소화도 잘되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있다. 그 와중에 밀가루 음식은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고, 소화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려 꺼리게 된다. 숙성된 재료들이 들어간 만두는 속을 불편하게 만들어 기피 대상 1순위다.


후반전을 향해 가는 친구에게 만두를 건넬 수는 없지만, 만두에 담긴 '복'만은 꼭 전하고 싶었다. 서툰 솜씨지만 편지 봉투에 정성껏 만두를 그리며 내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 정성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유독 많은 시간과 마음이 필요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줄줄이 엮여 있고, 작은 실수에도 '혹여 터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만두를 빚을 때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육아를 하는 과정은 또 어떠한가. 갓 태어난 아이를 키우며 한동안은 김치만두처럼 매콤하고 칼칼한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숨어 있으리라. 곁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편지에 육아의 고됨보다, 부모가 되는 기쁨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적었다.

내가 품고 있던 복이 친구에게도 고스란히 잘 전해지길 바라며.

봉투 위, 둥글게 그린 만두 그림이 그 복을 꼭 안고 가길 바라며.


사랑이 넘치는 이 깊은 밤,

곧 태어날 아기들과 산모의 건강을,

그리고 두 집의 안녕을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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