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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움 Dec 03. 2024

#24. 복을 전달하는 여자

: 김치 만둣국을 먹으며




#1.

어릴 적부터 김치로 만든 음식들을 좋아했다.

아빠의 영향 탓인지 맵고, 짜고 걸쭉한 음식들을 곧잘 먹곤 했는데 개중 김치를 베이스로 한 음식이라면 뭐든 오케이였다. 오죽하면 김치찌개, 김치볶음밥이 소울푸드 1,2위를 다툴까.


김치만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죽을 최대한 얇게 빚어 만두피를 만들고, 그 안에 잘 익은 김치를 담아 찜통에 찐 만두.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연기 사이로 그것의 빨간 속살이 모습을 드러낼 때면 절로 침이 고인다.

식초와 고춧가루를 가미한 간장에 살짝 찍어 먹었을 때 '아삭-'거리는 김치의 식감과 식욕을 자극하는 매운맛이란, 그야말로 "미미(美味)" 다!


김치만두는 군만두로도, 만둣국이나 만두전골로 끓여 먹어도 손색이 없다.

특히나 국물에 빠진 만두는 만두소에 국물이 자박하게 스며들기 때문에 한입 베어 물면 감칠맛이 입안에서 춤을 춘다. 만두소가 고기인지 김치인지에 따라 국물맛도 달라지기 때문에 먹는 재미도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떡국보다는 만둣국을 더 찾게 되었고, 결국 결혼 후 새로 꾸린 “나의 가정”에서는 새해 첫날 만둣국을 먹으며 한 해 복을 비는 것으로 만두 사랑을 일단락 하였다.




#2.

추운 겨울, 눈까지 내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만두를 빚는 시간적 여유나 경험치는 부족하지만 나에게는 새벽 배송 로켓프레시가 있다. 만둣국의 베이스가 될 사골국물을 끓이며 주문했던 김치만두를 꺼내 해동시켰다.

이번에는 특별히 떡도 넣었다. 아이 백일잔치를 하며 가래떡을 서비스로 받았는데 얼려놨다가 기회다 싶어 넣어본 것이다. 대충 슴덩슴덩 잘라 넣었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모양도 맛도 천편일률적인 떡국 떡보다 훨씬 쫄깃하고 맛있었다.


어릴 적 친척 집에 놀러 가 만두를 빚다가 만두는 마음이다, 내 마음이 이쁘면 만두도 이쁘게 빚어지는 법이다 라는 친척 어르신의 일장연설을 들은 적이 있다.

만두 주머니를 왜 복주머니라고 부르는지도 그때 알게 되었다. 만두 모양이 마치 복을 감싸 안은 복주머니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두를 만들기까지 들어간 시간과 노력, 정성을 생각해 본다면 '만두=복주머니'라는 타이틀은 비단 외관 하나 때문에 생겨난 별명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만두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드물기 때문이다.

만두소에 들어가는 당면과 채소, 두부 등은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일일이 다지거나 으깬다. 만두피 또한 너무 얇으면 찌는 과정에서 터질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얇기로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밀어줘야만 한다.

이렇듯 만두는 소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만두피를 빚고 다듬는 과정에서도 그 못지않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정성껏 빚은 만두피에 소를 넣으니 그야말로 복을 왕창 담은 셈이다.




#3.

그날 밤, 알이 꽉 찬 만두의 복을 생각하며 임신한 친구를 위한 선물을 골랐다.

쌍둥이라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 텐데 씩씩하게 지내는 모습이 그저 대견하고 멋있다.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밤.


임신 후기에 접어들수록 뱃속에 아이도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숨 쉬는 것은 물론 소화도 잘되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있다.

여러 음식들이 다 넘어가지 않지만 그중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고 소화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려 꺼리게 된다. 숙성된 재료들이 섞여 신물까지 올라오게 만드는 만두는 당연 기피 대상 1순위.

후반전을 향해 가는 친구에게 만두를 사줄 수는 없지만 만두 주머니에 담긴 복을 전달하고 싶었다. 어설픈 그림 실력으로 편지 봉투에 만두를 그리며 내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 정성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유독 많은 시간과 노력, 정성이 들어간다. 그것은 마치 만두를 만드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자잘하게 손이 많이 가고 행여나 만두 속이 터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 처럼 육아도 하나부터 열까지 이것저것 신경이 쓰인다.

우리 부부가 아니, 대부분의 갓 태어난 아기를 키운 부부가 그랬듯 한동안은 김치만두처럼 맵고 칼칼한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보석 같은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든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편지 안에는 육아 과정의 힘듦보다 부모가 되는 과정의 행복을 더 많이 적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복이 친구에게도 오롯이 잘 전해지길 바라며.

편지에 동봉한 만두가 복을 잘 전달해주길 바라며.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야심한 밤에 곧 태어날 아기들과 산모의 건강을, 그리고 두 가정의 행복이 함께하기를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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