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수면 패턴이 깨지던 날.
불확실한 상황은 종종 예기치 못한 선물을 들고 온다.
새벽 6시.
꼼지락거리며 주위를 두리번대는 아이를 보고 한 시간만이라도 더 자길 바랐지만, 결국 실패했다.
남편과 교대로 아이를 재우려 했지만 소용없었고, 우리는 포기 선언을 하고 말았다.
남편은 교문지도가 있는 날이라 어차피 일찍 나가야 되므로, 오늘만 30분 일찍 하루를 시작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 그 시간에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지. 하루 종일 또 아이랑 씨름할 텐데.”
- 괜찮아, 어차피 다시 누워도 눈만 말똥말똥일걸.
남편은 아이 밥을 먹이겠다고 방문을 나서며 더 자라고 했지만, 이미 잠이 깬 나의 발걸음은 부엌의 냉장고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피타 브레드 샌드위치.
[피타 브레드]
중동지역에서 주로 먹는 둥글고 납작한 플랫브레드. 포켓브레드라고도 한다.
고온에서 단시간에 구워서 속에 빈 구멍이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반으로 자루고 가운데 빈 부분에 여러 가지 재료를 채워서 샌드위치를 만든다.
(나카타 유이, 샌드위치, 어떻게 조립해야 하나. 그린쿡. 2014. p.17)
- 가끔 보면 자기는 가족을 위해 너무 희생하는 것 같아. 진짜 고맙지만 사실 걱정이 되기도 해. 무리를 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아서 해야 할 일도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잖아. 이런 게 의무가 되면 스스로가 더 힘들어질 테고. 나 같으면 좀 쉬라고 했을 때 아무 생각 안 하고 바로 잤을 것 같거든. 내가 가면 하루 종일 또 아이를 돌볼 텐데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쉬어.
- 응, 오빠 말이 맞아. 근데 이미 잠이 다 깨버려서 침대에 누워있어 봤자 잠도 안 오는 걸. 그 시간에 가장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침 만드는 걸 선택한 거야. 그리고 나는 요리하는 게 좋아. 의무감에 하는 거였으면 벌써 때려치웠지.
아침을 만들 시간에 조금 더 쉬었으면 하는 남편과 아침을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나.
한쪽은 종일 아이와 지내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더 지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다른 한쪽은 추운 교문 앞에서 속까지 비면 더 추울까 걱정을 했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 그 따뜻한 불협화음 사이로 새벽 공기가 스며든다.
이런저런 대화가 핑퐁처럼 오가는 와중에 샌드위치는 완성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꽉꽉 담아 만들었던 피타 브레드는 처음에 옆구리가 터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절반쯤 담고, 재료들을 조심스레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햄, 치즈, 계란, 오이, 상추까지.
토마토까지 넣고 싶었지만, 주말 아침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까 염려되어 이쯤에서 멈췄다.
샌드위치와 함께 먹을 커피도 준비 완료. 헤이즐넛 시럽을 넣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에 밤사이 굳었던 몸이 서서히 녹는 듯하다.
아이는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혼자서 모빌을 감상하며 손발을 꼼지락거렸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 미래의 청사진을 펼쳐보았다.
- 향후 10년 뒤, 우리 이름으로 된 집 한 채가 있을 거야. 그 후 10년 뒤, 아이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을 테니 유지 기간이 되겠지. 추억 쌓기 하면서 돈을 열심히 불려보자. 그 후 10년 뒤면, 아이는 서른 살을 훌쩍 넘겼을 테니 우리는 노후를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 능력이 되면 시기는 조금씩 더 앞당겨지겠지. 집도 두 채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여유가 되면 나중에 꼭 제주도 1년 살이도 해보자.
- 오 좋아 좋아. 틈틈이 여행도 많이 다녔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다. 추운데 고생이 많아 오빠.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오빠 쉬는 건데.
- 그러면 하루 종일 아이랑 같이 있는 거야? 생각만 해도 좋네.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도우미 선생님들을 영역별로 모실 거야.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붉게 상기된 그 모습은 마치 가을 햇볕에 잘 익은 대봉감 같았다.
#3.
피타 브레드 샌드위치를 먹으며 코끝 찡한 초겨울, 모처럼 따뜻한 아침을 맞이하였다.
피타 브레드는 속이 빈 주머니 모양을 하고 있다.
샌드위치가 탑 쌓기를 하듯 재료를 위로 하나씩 쌓아 올린다면, 피타는 빈 공간 안에 속 재료를 채워 넣어야 한다. 햄이나 치즈, 채소 등. 불고기나 잘게 찢은 닭고기 등도 가능하다. 브리또나 케밥처럼 밥을 넣는다면 한 끼 식사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피타 브레드에 재료를 차곡차곡 채우듯, 우리들도 아침 식탁에서 꿈과 사랑을 채워 나갔다.
아직 갈 길이 구만 리인 우리의 피타 주머니는 채운 것 보다 채워나가야 할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재료를 잘 다듬어 채워 넣는다면, 언젠가 우리 삶도 한 끼 든든한 피타 브레드 샌드위치처럼 근사해지지 않을까.
단,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