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토미트볼파스타
-오빠 그거 알아? 요새 다시 뷔페가 뜨고 있대. 출산 전에 갔었던 애슐리퀸즈 다시 가고 싶다.
-응, 근데 갈 수 없어. 우린 이제 틀렸어.
한숨이 절로 나오는 밤.
아이의 밤잠을 담당하던 날이라 일찍 잠을 자야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크리스마스 낭만은 고사하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우리에게는 사치일까?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작년 12/20일경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몰랐던, 부모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한 무지몽매한 자의 오만함의 결과이다.
당시 나는 입덧과의 싸움+휘몰아치는 학년말 프로그램 운영+충격과 공포의 생기부+방학을 앞두고 미쳐 날뛰는 망나니들 컨트롤로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입덧으로 이미 급식은 못 먹은 지 오래라 가방에는 늘 소보루 빵과 부스러기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수다 떨 겨를도 없이 책상에 쓰러져 반시체가 되어있었다.
그 와중에 다른 반에 문제가 생겨 우리 반 생기부로도 모자라 그 반 생기부까지 맡게 되었고, 마지막 달이라고 사고를 뻥뻥 치는 녀석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생활교육위원회가 주단위로 열리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학년계라는 업무상 필참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가 회의록을 작성하였고, 반마다 걸려있는 놈들을 보며 그 와중에 다행히 우리 반은 없네 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였다.
매년 몰아치는 업무 속에서도 늘 즐겁고 애틋하게 만들던 우리 반 연례행사인 학급문집을 이렇게나 사무적으로 대할 수 있다니. 하루에도 몇십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 했던,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12월이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남편과 데이트가 있던 날이었다.
조금 더 풀어보자면 마음은 뒤숭숭하고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 예민하기 그지없었지만 모처럼 남편과의 데이트라 약간의 설렘을 동반한 퇴근길 저녁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끼어있던 주간이라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고, 며칠 전부터 상큼한 샐러드파스타가 생각나 심혈을 깃들여 물색한 장소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문제로 전날 대차게 싸우고 화해를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에 낭만 한 스푼으로 우리 사이의 앙금이 눈 녹듯 풀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식당에 도착해 메뉴를 기다리며 서로의 오해를 풀기 위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조명, 맛있는 음식,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질 좋은 이야기.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박살내고만 한 아기의 째질듯한 울음소리.
이제 갓 100일 정도 돼 보이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부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대한 것 같았지만, 한번 울음이 터진 아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결국 남편은 아기를 안고 문 밖으로 나가 어르고 달래는 상황에 이르렀고, 아내는 시켜놓은 메뉴들을 음미할 새도 없이 황급히 먹기 시작했다.
-저럴 거면 왜 애를 데리고 나온 건지 모르겠어, 집에서 그냥 시켜 먹으면 될 일이지. 애는 애대로 울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저렇게 문 밖에서 달래다가 애 감기라도 걸리면 누가 책임질 건데.
-너 그 말한 거 내년 이 맘 때에 진짜 후회하게 될걸.
-아닌데. 이럴 거라는 거 예상 못했을 리 없잖아. 크리스마스 분위기 즐기려고 온 식사자리인데 다들 불편해하잖아.
폭주기관차가 따로 없었다. 나의 몸뚱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해져 버린지 오래라 아기의 울음소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에는 모성애도 생기지 않았던 때라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우는 아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졌고, 아기를 달랜다며 문 밖으로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마저도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선택한 식당은 문을 열면 바로 바깥으로 연결돼 있어서 이중문이 있었지만 문틈으로 숭숭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다들 안쪽 자리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못된 팥쥐 엄마처럼 난색을 표하던 나는 속에서 들끓는 화를 꾹꾹 참으며 총알같이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이야기는 공중에 떠도는 먼지처럼 흩어진 지 오래였다.
시간이 흘러 아이를 낳고 어느덧 첫 크리스마스 이브다.
백일까지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 뒤에는 아이의 생체리듬을 살피느라,
겨울이 오니 백일해에 독감이 사방에 퍼져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예방접종과 비염, 기타 상처 난 곳 점검으로 병원에 갔던 것을 제외하면 아이를 데리고 순수하게 나갔던 적은 손에 꼽는다.
식탁 위에서 밥을 먹던 우리는 아이가 터미타임을 할 때 즈음부터 마루로 내려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직 배밀이나 기어 다니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뜨거운 국 종류는 내놓지 않고 대개 주먹밥이나 김밥, 레트로 음식 위주로 만들어 먹거나 시켜 먹었다.
아이는 형형색색에 김밥, 자기 얼굴보다 더 큰 피자 한 판 등을 눈앞에서 볼 때면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코를 킁킁거리며 참새처럼 입을 벌리고 쳐다보기도 하였다.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식사 아니, 커피라도 마시고 싶은데 삐약거리는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갈 자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종종 작년의 그날이 떠오르면서 그 부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남편에게 이실직고하며 혹시라도 그 부부를 우연히 만난다면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는 사과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도 덧붙였다. 진심이었다.
약간의 들뜸과 설렘을 동반한 크리스마스 기간, 기다리고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아이와 셋이 집에 처박혀있던 부부는 얼마나 외출이 하고 싶었을까. 연애시절, 신혼생활 때 느꼈던 낭만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외출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테고, 어쩌면 아이가 울 것이라는 것도 예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감행한 크리스마스 외출이니 부부가 얼마나 간절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밖으로 외출을 감행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부부는 샐러드파스타 대신 미트볼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아침부터 면 요리에 미트볼, 치즈까지 야무지게 올려서 먹는 다소 헤비한 요리지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지 않을까라는 긍정회로를 돌리며 프라이팬을 잡았다.
미트볼은 만드는 것은 육아 과정에서 사치에 불과하다고 빠르게 판단, 구매로 노선을 바꿨다.
마늘과 양파, 토마토를 순서대로 볶고, 토마토와 아라비아따 소스를 4:6으로 섞은 후 미트볼을 넣었다.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하는 부부를 향한 사과와 뜨거운 응원이 반반씩 섞은 토마토소스를 만들며 미트볼에 졸이고 또 졸였다.
부디 행복하기를.
올 겨울, 셋이서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낭만을 즐길 수 있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응원했다.
<미트볼치즈파스타>
*재료 손질
- 양파, 마늘: 손질 후 다져서 달군 팬에 구워주기
- 토마토: 손질 후 듬성듬성 썬 후 양파와 마늘이 노르스름해질 때 함께 넣어 볶기.
*파스타 만들기
- 올리브유를 넣고 편마늘을 달달 볶다가 양파를 볶는다.
- 손질된 토마토를 넣고 소금과 후추를 넣어 볶는다.
- 미트볼을 넣고 살살 굴려가며 볶는다.
- 토마토소스+아라비아따 소스+버터를 4:6:1(0.5)로 섞어 끓이기 시작한다.
- 뭉근하게 끓어오를 때 즈음 페페론치노, 후춧가루를 살짝 뿌린다.
- 면과 면수를 넣고 섞는다.
*소스 배율은 개인 취향껏
**간이 부족한 경우, 참치액이나 소금 추가.
***너무 센 불에 오랜 시간 볶으면 고기가 풀어질 수 있으니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