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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움 Dec 31. 2024

#27. 음식도 리사이클링이 되나요?

: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1.

김치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작년에 엄마가 담가주신 동치미를 발견하였다. 두통을 주셨는데 먹기 좋게 조각으로 잘려있던 동치미는 다 먹고, 통무가 들어있는 통이 남아있던 것이다. 아깝게 또 버리겠네.. 이래서 음식 안 받겠다고 한 건데.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결혼을 한 이후, 부모님은 때가 되면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주시거나 제철과일을 박스째로 보내주신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그 빈도수가 점점 늘어났다.


어떤 날은 홈쇼핑에서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을 봤다며-

어떤 날은 음식을 만들었는데 빨리 가져다주지 않으면 상할 것 같다며-

또 어떤 날은 새로운 음식을 개발했는데 맛있으니 꼭 먹어보라는 말과 함께-


친정, 시댁 어떠한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대견함이 섞인 부모의 마음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내 자식이었어도 필시 그럴 테니까.

문제는 두 분 다 손이 크신 바람에 주신 음식의 절반도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사정을 말씀드리면 엄마는 분명히 오래 지나 못 먹는 것들은 다 버리라고 하실게 뻔하다. 하지만 말이 쉽지, 매번 버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이 쓰리다. 멸치볶음 하나를 만드는데도 재료 고르기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뭐 하나 허투루 보내는 것이 없는 부모님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받는 것이 영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남들은 배가 불렀다고 할지 모르지만, 받는 입장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은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2인 가족 겨우 밥 해 먹고 살고 있으며, 그렇다고 뱃골이 커서 먹방 유튜버들처럼 한 끼 식사에 음식들을 다 작살내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처럼 삼시세끼 다 챙겨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참다 참다 결국은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며 이런 문제들까지 안고 있어서 가끔은 버겁다고 말씀드렸다. 행여나 상처를 입으실까 싶어 심호흡 2-3번을 하고 말씀드린 것이었는데 다행히 이해해 주시고 그 후로 보내주시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제철 재료들이나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에게 연락을 하신다. 좋은 재료,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반사적으로 떨어져 있는 딸이 생각나시나 보다.




#2.

다시 작년 동치미로 돌아와서 급하게 엄마(a.k.a 대대장님)에게 sos를 쳤다.

며칠 후 집에 도착한 대대장님께서는 제일 먼저 동치미 상태를 꼼꼼하게 확인하셨고, 우리는 서둘러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작전명 '동치미 일병 구하기'.

다행히 통무는 많이 짜지 않고 동치미 국물이 잘 베여 감칠맛이 살아있었다. 오히려 양념을 해서 무쳐먹자는 말씀과 함께 무청도 들기름에 볶아서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응? 잠깐만, 무청을 들기름에?

동치미 국물에 빠져있던 무청인데 짜지 않을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무청은 정말 좋아하는 재료 중 하나였고, 게다가 들기름? 흑백요리사에 잠깐 출현해 핫이슈가 되었던 "나야, 들기름"에 그 들기름?!

나의 도전 정신에 불을 활활 지피고 바람같이 퇴장하신 대대장님을 뒤로한 채 나는 칼을 들었다.


<무청된장지짐>
- 무청에 들기름(1), 다진 마늘(1), 된장(1), 고춧가루(1), 미림(0.5), 들깻가루(0.5) 등을 넣어 무친다.
- 버무린 무청에 육수(쌀뜨물+멸치+새우가루(0.5))를 붓고 센불>중 약불로 조리듯 끓인다.
- 완성될 무렵 청양고추와 파를 넣고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졸여준다.

 *기호에 따라 다른 채소를 곁들일 수 있음.
  (식감을 위해 버섯을 추가했습니다.)







#3.

무청을 들기름에 지지다가 문득 재작년에 진행하려다 엎어진 식사이클링 챌린지가 생각이 났다. 당시 교과 특성을 살린 프로젝트 수업을 위해 여러 자료를 찾다가 발견하게 되었는데,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보호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눈여겨보고 있던 것이다. 다만 교과 특성상 보고서 작업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아이디어로만 남겨놓고 결국에는 다른 탄소중립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식사이클링이란,
식+리사이클링의 합성어로 자투리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통해 음식물의 폐기물을 저감 하는 것이다. 식사이클링을 통해 음식물 낭비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 등의 환경 문제를 줄이기 위해 시작한 푸드리사이클링이다.




버려질뻔한 무청은 결국 자기 역할을 톡톡이 해냈다. 갓 지은 밥에 무청지짐을 올리고 고추장을 한 스푼 넣어 참기름을 한 바퀴 돌리면 완성-

맛은? 말해 뭐 해. 동치미 국물이 베어 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된장과 어우러져 구수하고 감칠맛이 돌았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었던 동치미 일병 살리기 대작전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나는 역방쿠에 올려져 있는 아이 앞에서 밥을 비벼 먹으며 일장연설을 했다.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없어. 그것이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지, 이 세상에 나온 이상 가치 없는 것은 없어.

다만 살다 보니 내 인생이 어릴 적 꿈꾸고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휘황찬란하지는 않더라. 오히려 자투리 식재료처럼 내몰리고 깨지고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했지.

그래도 말이야. 그런 와중에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꼭 있어. 너는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그러니 혹시라도 삶이 마음대로 요리가 되지 않아 나 자신이 하찮고 불필요하게 여겨질 때면, 우울해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뭐라도 해봐. 설령 그게 우리한테 말하기조차 창피하고 바보 같은 짓이어도 말이야. 시간이 흘러 이불을 뻥뻥 차고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너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혹시 또 알아? 그 기회를 살리면 내 인생이 리사이클링이 아니라 업사이클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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