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미안함을 전해요, 크리스마스잖아요.
: 토마토미트볼파스타
- 오빠 그거 알아? 요즘 다시 뷔페가 유행이래. 출산 전에 갔던 애슐리퀸즈 또 가고 싶다.
- 응, 근데 갈 수 없어. 우린 이제 틀렸어.
한숨이 절로 나오는 밤.
아이의 밤잠을 담당하던 날이라 일찍 잠을 자야 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크리스마스 낭만은 고사하고, 밖에서 밥 한 끼 먹는 것도 우리에게는 사치가 된 걸까?
#1.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작년 12/20일경으로 돌아간다.
'부모 준비?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상태였던 한 무지몽매한 자가 겪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입덧과의 싸움+휘몰아치는 학년말 프로그램 운영+충격과 공포의 생기부+방학을 앞두고 미쳐 날뛰는 망나니들 컨트롤로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입덧으로 급식은 포기한 지 오래고, 가방에는 늘 소보루빵 부스러기가 굴러다녔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과 수다 떨 시간도 없이 책상에 쓰러져 반시체가 되었다.
그 와중에 우리 반 생기부로도 모자라 문제가 생긴 다른 반 생기부까지 맡게 되었고, 마지막 달이라고 사고를 뻥뻥 치는 녀석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생활교육위원회가 주단위로 열리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반마다 걸려있는 놈들을 보며 그 와중에 다행히 우리 반은 없네 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던 날들이었다. 매년 몰아치는 업무 속에서도 늘 즐겁고 애틋하게 만들던 연례행사인 학급문집을 이렇게나 사무적으로 대할 수 있다니. 하루에도 몇십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 했던,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12월이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남편과 데이트가 있던 날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지만, 전날 대차게 싸우고 화해를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에 낭만 한 스푼이면 우리 사이의 앙금도 눈 녹듯 풀어지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주간이라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고, 며칠 전부터 상큼한 샐러드파스타가 생각나 심혈을 깃들여 물색하였다. 마음은 뒤숭숭하고 체력적으로 지쳐있어 예민함이 하늘을 찔렀지만, 모처럼 남편과의 퇴근길 저녁 데이트로 약간의 설렘도 동반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조명과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맛있는 음식.
우리는 말문을 틔웠고, 서로의 오해를 풀기 위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박살내고만 한 아기의 째질듯한 울음소리.
"와앙-!" 이제 갓 100일이 넘어 보이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부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대한 것 같았지만, 한번 울음이 터진 아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남편은 아기를 안고 문 밖으로 나가 어르고 달래는 상황에 이르렀고, 아내는 시킨 음식 앞에 멍하니 앉아 후다닥 먹기 시작했다.
- 저럴 거면 집에서 그냥 시켜 먹지. 애는 애대로 울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 너 그 말 한 거 내년 크리스마스에 진짜 후회한다.
- 아닌데? 이럴 거라는 거 예상 못했을 리 없잖아. 크리스마스 분위기 즐기려고 온 건데 다들 불편해하잖아.
폭주기관차가 따로 없었다.
나의 몸뚱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지 오래라 아기의 울음소리를 감당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모성애도 생기지 않았던 때라 고래고래 악을 쓰며 우는 아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졌고, 아기를 달랜다며 차가운 바람이 숭숭 드는 식당 문 앞에서 아기를 달래는 아빠의 뒷모습에 괜히 울화통이 치밀었다.
못된 팥쥐 엄마처럼 난색을 표하던 나는 들끓는 화를 꾹꾹 참으며 총알같이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의 이야기는 공중에 떠도는 먼지처럼 흩어진 지 오래였다.
#2.
시간이 흘러 아이를 낳고 어느덧 첫 크리스마스이브다.
백일까지는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이후에는 백일해에 독감이 사방에 퍼져 나가지 않았다.
아니, 나가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검진으로 병원에 갔던 것을 제외하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기억은 거의 없다.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식사 아니, 커피라도 마시고 싶지만, 삐약거리는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갈 자신이 없다.
어느 날부터인가 밥상의 높이도 급격하게 낮아졌다.
식탁 위에서 밥을 먹던 우리는 아이가 터미타임을 할 때 즈음부터 마루로 내려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밀이나 기어 다니기를 하지는 못하지만, 뜨거운 국 종류는 내놓지 않고 대개 주먹밥이나 김밥, 레트로 음식 위주로 만들어 먹거나 시켜 먹었다.
아이는 형형색색에 김밥, 자기 얼굴보다 더 큰 피자 등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코를 킁킁거리며 참새처럼 입을 벌리기도 하였다.
종종 시켜 먹는 치즈오븐파스타. 집에서 만들려고 하면 이맛이 나질 않아서 늘 아쉬움이 남는다.그러다 보니 종종 작년의 그날이 떠오르면서 그 부부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남편에게 이실직고하며 혹시라도 그 부부를 우연히 만난다면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는 사과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도 덧붙였다. 진심이었다.
들뜸과 설렘을 동반한 크리스마스 기간, 기다리고 기대했던 크리스마스.
아이와 셋이 집에 처박혀있던 부부는 얼마나 외출이 하고 싶었을까.
아이와 함께하는 외출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테고, 아이가 울 것이라는 것도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감행한 크리스마스 외출이니 얼마나 간절했을지, 얼마나 용기를 내서 나온 자리인지 안 봐도 비디오다.
#3.
밖으로 나갈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크리스마스를 그냥 보내기에는 아쉬워서 샐러드파스타 대신 미트볼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아침부터 면 요리에 미트볼, 치즈까지 야무지게 올려서 먹는 헤비한 요리지만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지 않을까라는 긍정회로를 돌리며 프라이팬을 잡았다.
미트볼은 만드는 것은 육아 과정에서 사치에 불과하다고 빠르게 판단, 구매로 노선을 바꿨다.
마늘과 양파, 토마토를 순서대로 볶고, 토마토와 아라비아따 소스를 4:6으로 섞은 후 미트볼을 넣었다.
이름도, 주소도 알지 못하는 부부에게 보내는 사과와 응원의 마음을 반반씩 섞어 소스에 같이 졸였다.
부디 행복하기를.
올 겨울, 셋이서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낭만을 즐길 수 있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응원했다.
<미트볼치즈파스타>
*재료 손질
- 양파, 마늘: 손질 후 다져서 달군 팬에 구워주기
- 토마토: 손질 후 듬성듬성 썬 후 양파와 마늘이 노르스름해질 때 함께 넣어 볶기.
*파스타 만들기
- 올리브유를 넣고 편마늘을 달달 볶다가 양파를 볶는다.
- 손질된 토마토를 넣고 소금과 후추를 넣어 볶는다.
- 미트볼을 넣고 살살 굴려가며 볶는다.
- 토마토소스+아라비아따 소스+버터를 4:6:1(0.5)로 섞어 끓이기 시작한다.
- 뭉근하게 끓어오를 때 즈음 페페론치노, 후춧가루를 살짝 뿌린다.
- 면과 면수를 넣고 섞는다.
*소스 배율은 개인 취향껏
**간이 부족한 경우, 참치액이나 소금 추가.
***너무 센 불에 오랜 시간 볶으면 고기가 풀어질 수 있으니 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