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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뽀빠이의 힘이 필요한 새해

: 시금칫국 한 그릇에 담긴 새해 소망

by 채움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새해다.

나라 안팎으로 연일 입에 담기도 민망한 뉴스가 오르내리고, 때마침 동장군까지 기승을 부려 꾸무리한 세기말 날씨까지 합세해 올해는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창문 틈 사이로 기습하는 찬바람 때문에 마음자리까지 소란해질까 봐 애꿎은 보일러 온도만 높이는 요즘이다.






#1.

'새해 첫날 해야 할 것들' 공식은 도대체 어디서 흘러들어온 걸까.

유별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되고 싶지도 않아서 일단 시류에 탑승해 보기로 한다.


다른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아침밥 먹기와 덕담 나누기는 꼭 하고 싶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 덕분에 남편과 나는 반자동적으로 기상해 "새해 복 왕창 받으라"는 덕담을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는 아침밥 먹기.

남편에게 떡국을 먹을지 넌지시 물어봤으나 대답은 "노우".

단칼에 잘리는 남편의 대답에 이유를 물었더니, 나이 한 살 더 먹는 기분이 싫단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니, 그 부담감을 애초에 회피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떡국 한 그릇에도 비명을 삼키는 가장의 비애란.


이런저런 이유로 예년과 달리 조용하고 무겁게 시작된 새해 첫날.

없는 힘이라도 쥐어짜서 달려야 할 판국에 첫날부터 무언가를 먹지 않고 넘어가려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그래서 올해는 떡국을 대신할 '기운 충전용 새해 음식'을 찾기 시작했고, 눈에 띈 것이 바로 '시금칫국'이었다.




#2.

시금치는 피로 해소 약재로 쓰인다. 피를 만드는 조혈 작용이 탁월해서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고 피로를 푼다고 한다. 특히 겨울에는 혈관수축으로 속에 열이 차는데 서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시금치가 이를 풀어준다고 하니, 겨울철 음식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이 외에도 겨울철 시금치와 관련된 효능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력 관리, 노화 예방, 체중 조절 등.


결정적 한 방은 역시 뽀빠이.

시금치를 먹고 힘이 솟는다 하니 더 이상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시금칫국>
*재료 손질
- 시금치: 밑동을 살리고(보라색+빨간색 부분) 흐르는 물에 여러 번 헹구어 흙을 털어낸 후, 썰어줌.

*시금칫국 만들기
- 육수를 끓인다. (육수는 바지락 코인 or 멸치 코인을 활용)
- 육수가 끓어오르면 된장(2)을 풀고, 다진 마늘(1), 고춧가루(1), 건새우가루(1)를 넣는다.
- 손질한 시금치, 대파, 청양고추를 넣고 5분 정도 더 끓인다

*간이 부족한 경우, 국간장이나 참치액젓 추가.



다행히 시금칫국이 맛있었는지 남편은 앉은 자리에서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나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시금칫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새해 첫날에는 장수와 부를 기원하기 위해 떡국을 먹었다는데, 녹색 채소로 하루를 든든하게 여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아직은 설익은 느낌의 새해.

달력 몇 장 넘긴다고 삶의 속도가 달라지거나 방향이 크게 들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일상의 틈새들을 들여다보며 뭔가로 메워나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작은 구멍에는 작은 것들을, 큰 구멍에는 그보다 더 큰 것들로 알차게 메워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조금씩 채워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 삶도 제법 든든해질 것이다.


눈곱도 못 떼고 하루를 시작해 겨우 밥 한 끼 먹고 나면 어느새 저녁이다.

숨 가쁘게 출렁이는 일상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어정쩡한 마음까지도 품에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넉넉한 한 해이기를 소망한다.


뽀빠이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다.




*새해 첫날 해야 할 것들: 아침밥 먹기, 덕담 나누기, 작심삼일 목표 세우기, 청소하기, 재정 계획 점검하기 등.

**시금치 효능: 술자리 많은 연말, 간 피로 풀어주는 시금치[정세연의 음식처방].동아일보.2024.12.22









아침 식탁 위에 올려둔 크고 작은 이야기들.

<아침식사 됩니다>의 첫 번째 시즌은 여기에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아침 식사가 되었기를 바라며, 다시 좋은 날에 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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