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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위하여-

by 채움



결혼을 준비하던 작년 이맘때, 나는 아침 식사를 다시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 작은 결심이 우리 삶을 바꿀 줄은 몰랐다.


- 첫째,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 챙기기.

- 둘째, 따뜻함이 오가는 식탁 만들기.


그 결심은, 생각보다 오래 버티고 있다.




"아침을 차린다고? 둘 다 일하잖아, 아침에 정신없지 않겠어?"

"아직 신혼이라 그래, 좋을 때다."


주변의 말림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여기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1.

건강한 삶을 원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이상, 건강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귀차니즘이 뼛속까지 자리한 우리에게 운동은 사치였다. 결국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우리가 손댈 수 있는 것은 식단이었다. 특히 아침 식사처럼 하루를 가볍게 여는 한 끼라면, 시도해 볼 만했다.


사실 우리의 식단은 늘 고칼로리였다.

두 사람 모두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점심은 자연스럽게 학생들 성장에 맞춘 메뉴였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수제돈가스,

어떤 날은 크림 뇨끼,

잔반 없는 수요일에는 어김없이 로제 떡볶이와 규동, 회오리 감자까지 풀 세트.

매번 급식판의 오목한 칸마다 음식이 넘칠 듯이 들어찼고, 우리의 행복 또한 바다처럼 넘실거렸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저녁을 먹기도 전에 몸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신혼의 달콤함에 야식까지 더해지던 날들이었다. 그 결과는 다음 날 아침, 체중계 위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소리 없는 비명이 지박령처럼 집 안을 떠돌았다.

그렇다고 건강을 핑계 삼아 하루 한 끼만 먹자니, 사춘기 아이들과 입씨름하며 아등바등 버티는 내 몸뚱이에게는 옹졸한 처사 같았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몸무게가 늘면 기분도 무거워진다."에 만장일치를 했던 터, 결국 저녁 대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그 변화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20대 이후로 아침과는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

그 무렵 나는 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아침 먹고 왔니?"

매해 하는 질문이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결혼 후, 언젠가 우리 아이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차려주시는데 등교 준비하느라 바빠서 못 먹었어요.

- 아침 먹으면 속이 불편해서요.

- 부모님께서 일찍 일 나가세요.

- 그냥 안 먹는 게 습관이 됐어요.

- 차라리 그 시간에 잘래요.


가지각색의 이유가 등장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아침은 늘 '밀려나는 식사'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 아이도 같은 과정을 겪지 않을까.

바쁜 등교 준비 속에서 아침을 거르거나, 때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엄마, 아빠도 아침 안 먹잖아, 근데 나는 왜 먹어야 돼?"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뭐라 답할 수 있을까.

"우린 이미 고인 물이거든." 하고 웃어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명분 없는 훈육은 때론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등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기억난다.




#3.

그렇게 우리의 아침은 건강과 미래를 위한 작은 실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리얼, 요거트처럼 가벼운 메뉴로 시작했다. 조금 익숙해지자 주먹밥, 샌드위치, 김밥 등 간단한 손식을 시도하게 되었고, 나중엔 국이나 찌개도 식탁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결혼 1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우리의 아침은 여전히 서툴고 치열하다.

메뉴 선정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이 따로 놀기도 하고, 가끔은 속이 부대끼기도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래도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제철 재료를 고르고, 레시피를 살펴보는 일이 좋다.

그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고 식탁을 차리는 과정도 즐겁다.

바쁜 아침 시간을 쪼개어 음식을 만든다는 건, 내 몸을 위한 성실한 인사이자, 하루의 온기를 차오르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한 끼를 나누는 이 시간이, 지금 내가 누리는 확실한 행복 중 하나가 되었다.


잡지에서 본 지중해식 아침 식탁은 멀었다.

하지만 어설프게 뭉쳐놓은 주먹밥 덩어리를 보며 우리는 기꺼이 외친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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