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면함: 끊어지지 않고 죽 잇따라 있는 상태
얼마 전 영상을 보다가 '밥 먹는 자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식탁은 소속감과 사랑을 배워야 하는 자리라는 것이 골자였다.
문득, 둘 이상 밥을 먹을 때는 핸드폰을 잠시 멀리하자고 협의를 봤던 우리의 식사 룰이 떠올랐다.
오빠는 핸드폰을 보면 왜 안되는지, 안 보면 뭘 하냐는 원초적인 물음을 던졌다. 나는 식사 시간에 핸드폰 사용으로 인한 잘못된 식습관, 예의 문제 등 이런저런 이유들을 늘어놓고는 "그래서 결론은 대화"를 해야 된다고 둘러댔었다.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식탁에 앉아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그 안온함이 그리웠던 건데.
결혼을 하면서 네 개의 귀퉁이로 이루어진 이 집 안에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부엌이 적격이었고, 안온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빌드업 과정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의 식탁이 떠올랐다.
엄마의 식탁이라면 다정함을 배울 수 있으리라.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 아침은 언제나 갓 지은 밥 내음과 나무 도마 위 칼질 소리로 시작했던 것 같다.
새벽 수영을 갔다가 출근을 하시는 아빠 덕분에 온 가족의 기상 시간도 남들보다 빨랐는데, 그중 엄마는 늘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셨다.
지금이야 아침 대용식도 잘 나오고 새벽 로켓 배송 찬스도 있어 식탁을 차리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당시에는 한 끼 식사를 차리기 위해 집 앞 상가를 도장 깨듯 돌아다니며 음식 재료를 구입해야만 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으셨는지 굴다리 시장과 건넛마을 장터까지 돌아다니며 사시사철 제철 재료들을 직접 공수해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사냥에 성공한 고양이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오셨다.
덕분에 우리 집은 매 끼니 밥과 국(찌개), 제철 나물, 고기 등이 올려진 접시가 새롭게 놓였다.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식탁.
그리고 차려진 식탁만큼이나 나의 시선을 한참 머물게 하는 엄마의 모습.
부엌에서 아침을 여는 엄마는 빛이 들어와 반짝이는 식탁만큼이나 생동하고 있었다.
새벽 수영을 갔다가 돌아오는 아빠의 시간과 맞물려 남매는 학교 갈 준비를 끝낸다.
아침 준비가 다 됐으니 빨리 나오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자리에 앉으면, 열에 여덟은 수저만 덩그러니 놓인 밥상을 맞이하게 된다.
엄마는 늘 아빠와 나, 동생 모두가 식탁에 앉아야만 음식을 내놓으셨다.
갓 푼 밥에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메인 반찬들, 마지막까지 끓고 끓어서 국물이 자박해진 찌개까지.
아침 밥상을 차리고 내놓는 순서까지 전략적으로 고민하는 걸까 싶다가도 늘 분주하게 부엌을 왔다 갔다 하시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찰나의 시간이지만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음식을 먹이고 싶으셨겠지.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식탁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난 그 차분하고 담백한 분위기가 좋았다.
중간중간 음식이 먹을만하냐고 물어보는 엄마와, 찌개가 맛있다고 밥 한 공기 더를 요청하는 아빠.
국만 있으면 한 그릇 뚝딱인 동생.
먹을만하냐고? 먹을만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 맛있어!라고 엄마의 질문을 정정하는 나의 모습까지.
아빠는 식사를 하시면서 다음 주 회사 일정과 회식 날짜를 알려주셨고, 나와 동생은 어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종알거리곤 했다. 전업주부의 단조로운 일상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걸까. 우리가 없으면 엄마가 하루종일 심심하실 것 같아 아침 식사 시간에 늘 이야기보따리를 한 움큼씩 풀어놓곤 했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어린 시절 아침의 기억이다.
다행스럽게도 결혼을 하고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나는 열심히 아침을 차리고 있다.
물론 엄마처럼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차리는 짬은 되지 못한다.
중간에 아이가 생겨 입덧으로 한동안 부엌 출입을 못하기도 했고, 전날 저녁에 너무 많이 먹어서 부대낀다거나 잠을 더 자고 싶다 등의 이유를 대는 오빠의 '센스' 덕분에 은근슬쩍 넘어간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엄마의 다정한 식탁을 조금이나마 흉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중이다.
밖을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올 때면 동네 마트나 시장을 기웃거리며 음식 재료들을 찾아보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늘 찌개나 국은 차례를 기다리다가 마지막 순번에 올라간다.
혼밥 하던 시간이 길어 한 번에 휴대폰을 끊어 낼 수는 없지만 보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리는 식사 내내 요리할 때 듣던 재즈를 들으며 카페에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오빠의 소소한 학교 일상, 동네 업데이트 소식, 경제와 최근 관심사,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어떤 날은 서로 시답잖은 농담과 상황극으로 깔깔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무거운 공기가 부엌을 압도해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목도하기도 한다.
이 모든 순간들이 모여 나와 우리를, 다정한 식탁을 만들어 주고 있다.
몇십 년 전 엄마가 만드셨던 풍성한 식탁의 반의반도 못 미치지만, 엄마의 다정함이 묻어있던 식탁의 면면함은 나의 아침 식탁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도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