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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움 Jun 25. 2024

#1.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위하여-



작년 이맘때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는 아침 식사와 관련해 두 가지 다짐을 했다.

-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 식사 차리기

- 따뜻함이 오고 가는 식탁 만들기






"아침을 차린다고?  둘 다 일하잖아, 아침에 정신없지 않겠어?"

"아직 신혼이라 그래, 좋을 때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꾸역꾸역 이 프로젝트를 강행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두 사람 모두 학교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점심은 자연스럽게 학생들 성장에 맞춘 고칼로리 식단이었다.

어떤 날은 수제돈가스,

어떤 날은 크림 뇨끼,

잔반 없는 수요일에는 어김없이 로제 떡볶이와 규동, 회오리 감자 등이 나오는 900Kal의 식단을 영접했다.

급식판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오목한 공간에 테트리스처럼 쌓인 음식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참으로 행복해했다.


문제는 급식을 먹고 난 후였는데, 집에 와서 저녁을 또 해 먹자니 몸이 헤비 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혼의 재미를 느껴보고자 야식이라도 시켜 먹는 날에는 다음날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건강 운운하며 매일 하루에 한 끼만 먹고사는 것은, 사춘기 아이들과 행복한 입씨름을 하며 아등바등 하루를 버티고 있는 내 몸뚱이에게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늘어나는 몸무게=몸이 무거워짐=기분 별로”에 만장일치를 했던 터,

며칠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한끝에 저녁 대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 모두 20대 이후부터 아침 식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2.

그 무렵 반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고 오는지 물어보기도 하였다.

아침 먹고 왔냐는 질문은 연례행사처럼 묻던 것이었는데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차려주시는데 등교 준비하느라 바빠서 스킵-

아침 먹으면 배가 아파요(부대껴요)

부모님께서 아침 일찍 일 나가세요

안 먹는 게 습관이 돼서

그 시간에 잠 선택

기타 등등

..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아이가 생긴다면 분명 이와 같은 과정을 밟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을 준비하고 먹이는 것이 늘 전쟁이 될 테고,

아침을 먹지 않고 가는 날이면 아이는 누군가에게 위와 비슷한 이유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다가 행여나 아침 먹는 시늉이라도 하는 감사한 날에

"엄마, 아빠는 아침 안 먹잖아, 근데 나는 꼭 먹어야 돼?"

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나와 오빠는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침도 잘 챙겨 먹지 않는 우리 부부가 아이를 아침 식탁에 앉히는 것이 오히려 폭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너는 자라나는 새싹이기 때문에 잘 먹어야지, 엄마 아빠는 이미 고인물이라 안 먹어도 괜찮단다"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렇다 할 명분이 없었다.

갑자기 등줄기에서 땀이 났다.




#3.

그래서 우리는 느리지만 천천히, 아침을 먹는 “연습”에 돌입했다.

이제 막 이유식을 떼고 밥을 먹는 아이들처럼 이것저것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출근 준비로 정신이 없다 보니 시리얼이나 요거트를 시작으로 주먹밥, 볶음밥, 샌드위치, 김밥, 유부초밥 등 핑거푸드가 주 타깃이 되었고, 적응이 될 무렵에는 국(찌개)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아침이라 처음에는 속도 부대끼고

메뉴 선정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이 따로 놀아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결혼 1년 차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 지난 연습 기간을 돌이켜보니 그래도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준비하면서 제철 재료나 과일을 찾아보고 요리 레시피를 참고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건강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나 기분에 어울리는 재즈를 틀어놓고 아침 식탁을 준비하는 과정도 늘 즐겁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식탁에 앉아 가볍게 한 끼를 챙겨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소소한 행복 중 하나가 되었다.



잡지책에서 볼 수 있는 근사한 한식 밥상, 지중해식 아침 식탁 차리기 등은 아직 멀었지만 엉기성기 얽어맨 등나무 가지처럼 붙어있는 주먹밥 덩어리를 보며 오늘도 우리 부부는 외친다.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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