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나는 늘 '앞뒷면이 꽉 찬 학습지'를 나눠주는 선생님이었다. 학습지에 빈칸이 생기면 빠진 것이 없는지 불안해했고, 행여나 내가 세운 계획이 어긋나면 초조해했다. 100퍼센트를 준비해야 비로소 70퍼센트라도 지켜낼 수 있다는, 어찌보면 강박과도 같은 치열함이 내가 아이들을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빽빽하게 만들어진 학습지는 곧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그 '꽉 채움'의 피로를 원망해 본 적이 없다.
학교를 잠시 떠나 식탁 앞에 선 지금도 그 습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아이의 식판에 영양을, 남편의 국그릇에 온기를 가득 채우며, 나는 여전히 학습지의 빈칸을 메우듯 가족의 하루를 설계하는 중이다. 덜어내는 것이 답이라는 요즘 세상이지만, 꽉꽉 채워 넣는 정성 또한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요리 중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것이 무엇이 있을까. 비빔밥이지 않을까. 비빔밥 한 그릇에는 다양한 재료가 모습을 달리하며 놓여져 있다. 주인장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비빔밥 재료들이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것들을 채워보겠다는 고집스러운 마음이 그릇 안에 담길 때, 비로소 비빔밥은 완성되는 듯 싶다.
그래서 내게 비빔밥은 늘 기분 좋은 요리다.
혼자 먹어도 맛있지만, 둘이 먹으면 더 맛있다.
무엇보다 요사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비어 있을 때면, 꽉 채운 비빔밥 한 그릇이 힘이 된다. 내 안에 흩어진 마음들도 이렇게 다시 모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친정 부모님이 오랜만에 놀러 오셨다.
바리바리 싸 오신 나물 덕분에 그날 저녁,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비빔밥을 해 먹었다.
그런데 비빔밥 귀신이라도 씐 걸까.
어디가 허하고 아쉬웠는지, 그날 이후로 2~3일 동안은 아침마다 나물을 꺼내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있다. 그것도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다 긁어모아 꽉꽉-.
시간이 없고,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냉장고 속에서 숨만 쉬던 재료 한 두 개를 꺼내 비벼 먹던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첫날은 고추장 대신 된장찌개를 섞어 만든 비빔밥,
둘째 날은 매콤하게 고추장만 넣은 비빔밥,
셋째 날은 계란프라이까지 얹어 야무지게.
그릇이 넘칠 정도로 꽉 채워진 비빔밥은 아이러니하게도 '덜어냄의 미학,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함께 따라다니던 고전적인 문장 "Less is more"까지. 건축가 Mies van der Rohe가 했던 이 말은 미니멀리즘 미학의 대표적인 정신으로 꼽힌다. 단순함 속에 본질을 남기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감각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참 좋은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미니멀하게, 단순하게, 가볍게 살아야 한다는 조언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의 나는, 나를 덜어내기보다 다시 채워야 할 때인 것 같다.
육아를 하며 비워낸 시간, 소진된 마음, 잠 못 잔 밤들..
그것들을 되찾기 위해 나는 마치 비빔밥에 홀린 사람처럼, 몇 날 며칠 동안 '가득' 채운 비빔밥을 만들고 또 만들어 먹었다.
채운다는 행위는 단지 배를 채우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었다. 비빔밥 재료를 그릇에 채울수록 마음도, 기운도, 그리고 삶의 감각도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것들의 복잡한 맛과 식감 덕분에 나는 또 며칠을 힘을 내어 주어진 일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텅 빈 느낌이 들 때야 비로소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허하고 아쉬웠던' 감각은 아마도 무의식 속에서 '나를 다시 들여다 보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덜어내기 전에 먼저 채워야 할 때가 있다. 비우면 가벼워진다지만, 때로는 묵직함이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된다. 이번 주 아침으로 먹은 비빔밥들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돌이켜보면 교실에서도 나는 늘 '비어 있음'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학습지 칸이 비어 있으면 가르침이 부족한 것 같아 초조했고, 계획안의 여백이 보이면 내 성실함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채움의 피로를 원망해 본 적은 없지만, 그 과정에서 행복보다는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날이 더 많았다. 그날의 '채움'은 타인을 향한 책임이자 완벽을 향한 증명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탁 위에서 만난 '채움'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닌, 소진된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그릇을 채우면 되는 것이다.
비빔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는 내 삶을 다시 가꾸기 위한 출발점 앞에 섰다. 칠판 앞에서 아이들에게 쏟았던 것들을 이제는 오롯 나를 위한 비빔밥 한 그릇에 쏟아부어 본다. 어쩌면 재료들을 꽉꽉 담은 비빔밥 그릇 하나가 나를 살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꽉꽉 채워 먹이는 이 시간이야말로 나에게 주는 가장 다정한 보충수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