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지금 열이 38.9도, 39도네요. 아픈 거 못 느끼셨어요? 아이고 거 참.. 목이 난리가 났네요"
여름방학이 시작되며 겨우겨우 숨통이 트이려던 우리 가족은, 나의 코로나 확진으로 단 하루 만에 다시 막혀버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더니, 이번 여행은 기대만큼이나 큰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저녁,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 먹고 잠이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 오한과 함께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버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조식으로 먹은 음식까지(얼마 먹지도 못했지만) 다 게워내고, 결국 도착한 병원에서 코로나 확진을 받게 되었다. 호텔에 짐을 푼 지 20시간도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셋방살이를 하다 쫓겨나는 사람들처럼 짐을 다시 싸고, 도망치듯 호텔 로비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차창 밖 풍경을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짠 여행인데.
밤 9시, 주말 가릴 것 없이 쏟아지던 업무에 치이던 남편과, 독박육아로 지쳐가던 나에게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틈이었다. 나아가 무더운 여름날, 집 안에서 다 녹은 스무디처럼 축 늘어져 있던 아이에게도 작은 바람을 일으켜줄 탈출구였다.
업무, 양가 가족, 지인, 우리 안의 또 다른 고민거리들에서부터 간신히, 정말 간~신히 벗어나 오직 세 가족만이 꽁냥꽁냥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걸 '개 밥 말아먹듯' 말아먹고 만 것이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듣도 보도 못한 욕이 절로 나왔지만, 나보다 더 아쉬웠을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저 입 안으로 욱여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하며 한숨을 쉬었다.
체력 보강에 집중하며 며칠 푹 쉬고 싶었지만, 남편 혼자서 육아와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긴 어려웠다. 그건 누가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챗구멍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온 머리카락처럼, 작은 빈틈은 수시로 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빈틈은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나는 마스크 두 겹을 쓰고, 숨도 잘 안 쉬어지는 무더운 여름날, 육아와 집안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오래전, 엄마의 수술을 앞두고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엄마도 사람인데 아플 수 있지. 얼마나 사람을 부려먹으려고 그래. 뭐, 왜, 어쩌라고"
반항기 가득하고 예민함이 극에 달하던 시절, 그런 말에 씩씩거리며 대꾸했던 기억도 난다. 괜한 말을 했다며 미안해하던 어른들의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그 장면이, 왜 지금 다시 떠오르는 걸까. 안방에서 열과 싸우고 있는 이 순간, 슬프게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 하루만 손을 놓아도 쌓여가는 빨랫감과 채 닦지 못한 싱크대 위 물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말라버린 이유식의 흔적, 그리고 그런 것들을 다 처리하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집 안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방 한구석, 먼지가 쌓여 작은 섬처럼 된 자리를 노려보며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조금 풀릴 것 같았다. 나를 붙들고 있는 불안과 죄책감을 걷어내기 위해 닦고 닦고 또 닦았다.
"야잇 세균맨아! 안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마!"
그때였을까. 고소한 밥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 남편은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우스갯소리를 던지더니 이내 어깨를 토닥였다.
"잘 먹어야 낫지. 나 코로나 걸렸을 때 네가 챙겨줬잖아."
그는 장을 보더니 그날부터 매일 다른 메뉴의 아침 식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의사가 이야기한 '5일 권고조치' 내내. 제육볶음 김밥을 시작으로 참치유부초밥, 알리오올리오, 수육, 김치교자와 새우튀김, 삼겹살김치말이 김밥, 육개장.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대망의 '갈비찜'까지.
"잘 먹어야 낫는대. 갈비 지금 두 개 먹은 거지? 하나 더 도전해 봐!"
코로나 때문에 미각이 둔해져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우걱우걱 갈비찜을 씹어먹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조차도 돌보지 못했던 내 몸을 누군가는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의사가 말한 권고조치 5일째 되는 날 밤, 몸 상태는 조금 나아졌고, 아이도 일찍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마주 앉아 <라이온킹-할리우드 볼>을 보기 시작했다. <라이온 킹> 개봉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할리우드 볼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상으로, 디즈니 덕후인 나와, <라이온 킹>을 인생영화로 꼽는 남편이 절대 놓칠 수 없는 콘텐츠였다.
의자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꿀차를 한 잔씩 들고 영상을 틀었다. 화면이 열리고, 드럼 소리와 함께 웅장한 오프닝이 흐르는 그 순간.
"Nants ingonyama bagithi Baba~"
영상 속 관객들이 일제히 숨을 멈춘 듯, 우리도 입을 다물고 그 장면에 빨려 들었다.
수천 명이 모인 야외 공연장. 그곳에는 아이를 무릎에 앉힌 부모, 손을 꼭 잡은 연인들이 있었다. 노래 한 구절 한 구절이 울려 퍼질 때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환희가 가득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큰 생명의 흐름 속에 녹아든 느낌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괜히 우리 둘 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지 못한 여행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잃어버렸던 일상의 평온을 다시 마주한 것에 대한 벅참이었을까.
"우리 나중에 셋이서 꼭 라이온킹 뮤지컬 보러 가자."
남편과 몇 번이고 약속에 약속을 거듭하며 그 순간을 마음 깊숙이 저장했다.
“It’s the circle of life, and it moves us all
Through despair and hope, through faith and love...”
영상이 끝날 무렵, 나는 따뜻한 꿀차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생각했다.
삶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감정을 끌고 흘러간다. 기대와 실망, 분노와 사랑. 그리고 그것들은 직선이 아니라 하나의 원처럼 이어진다.
삶이 이렇게도 예상 밖으로 흐를 줄 누가 알았을까.
기대했던 여행은 대차게 말아먹었지만, 오히려 그보다 큰 걸 얻은 여름이었다.
남편의 정성 가득한 아침식사 덕분에,
그리고 이 조용한 밤의 한 장면 덕분에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이와 웃고,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그 '아무 일 없는', 때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이다.
아프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무너짐과 다시 일어서기까지 겪었던 슬픔과 회복의 감정들이 원처럼 이어진 여름, 우리 가족만의 Circle of Life를 겪으며, 다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