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젠가는 아이가 불고기롤유부초밥을 만들 날을 상상하며.
작은 부엌이 생겼다.
우리 집 거실 한켠에 자리 잡은 주방놀이 세트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뜬 아이는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부엌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최근에 선물 받은 장난감 사운드카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작은 부엌 앞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신선한 재료들(?)을 신중히 골라 냄비에 가득 담고, 장난감 가스레인지에 불을 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리 소리가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아이가 장난감 부엌에서 상상의 식탁을 차리는 동안, 나는 진짜 부엌에서 아침으로 먹을 유부초밥을 준비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순간이다. 더 이상 이 주방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던 거실 한 구석이 아이의 손길로 새롭게 탈바꿈했으니까 말이다.
이날의 아침 메뉴는 '불고기롤유부초밥'.
전날 먹고 남은 불고기로 냉털을 할 계획이었다. 고기를 굽자 부엌은 달콤하고 짭조름한 향으로 가득 찼다. 때마침 아이가 줄기차게 틀어놓은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가 부엌으로 흘러들어왔다. 수도 없이 들어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지만, 아이는 들을수록 신이 나는 건지 엉덩이를 흔들며 박수를 친다.
부엌 가득 퍼진 불고기 냄새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집 안을 온기로 가득 채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부엌의 냄새와 따뜻한 주황빛 조명, 엄마가 만들어주던 호박쌈밥까지. 그 기억들이 한 장면처럼 되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건축가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는 "물질의 감각과 소리, 빛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장난감 부엌에서 흘러나오는 동요와 아이의 웃음, 달짝지근한 불고기 냄새가 거실을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꿔놓았다.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머물고 기억이 쌓이는 그릇이 된다. 아마 아이는 상상의 음식을 만들며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먼 훗날, 이 부엌이 구석에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쓴다 해도 이 풍경은 사진처럼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기다림 끝에 완성된 한 입 크기의 유부초밥은 다소 엉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삼각, 사각 초밥은 익숙했지만, 롤 모양의 유부초밥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고기의 달짝지근한 맛은 혀끝에서 오래 맴돌았다.
유부초밥과 김밥류의 음식은 기다림보다 사라짐이 더 빠르다. 한 입이 사라지는 속도는 만드는 시간보다 훨씬 짧다. 하지만 그것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허무함 대신 따뜻한 기억이 남아있다.
어쩌면 삶도 결국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사라지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요리를 하고, 노래를 듣고, 놀이를 한다. 사라질 걸 알기에 오늘이, 그 시간이 더욱 선명해진다.
아이에게 '오늘의 시간'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아이가 프라이팬을 들고 요리를 흉내 내는 동안, 나는 진짜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우며 그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시간을 멈출 수도, 재단할 수도 없지만, 다가오는 그 순간을 정성껏 '빚을' 수는 있다.
이 작은 부엌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앞으로의 삶을 지탱할 또 하나의 따뜻한 흔적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