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커 가는 아이를 돌보며, 나의 체력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아침잠 없던 내가, 요새는 바닥에 머리만 박으면 눈이 감긴다. 아이가 내 얼굴에 책을 들이밀때면, 깜짝 놀라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비몽사몽 페이지를 넘긴다.
그래서 아침은 늘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다.
정신을 붙잡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인 것이다.
물을 들이키듯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하루의 무게에 떠밀리기 전에, 나를 붙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아이의 낮잠 틈을 타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마련한다.
늦은 아침 식사는 늘 단출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 감각을 돌보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명란버터우동'. 알갱이가 살아 있는 명란 한 숟갈, 버터 한 조각, 곱게 부순 김가루, 다진 쪽파와 청양고추를 준비한다.
부엌을 가득 채우는 물 끓는 소리. 보글보글 튀는 물방울은 오늘 하루의 박자를 알려주는 듯하다. 또 얼마나 정신이 없으려나.
끓어오르는 물에 면을 넣자, 뭉쳐있던 면발이 천천히 풀리며 밀가루 향이 살짝 올라온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면발은 투명하게 익어간다.
뜨거운 면 위에 버터를 얹고 미리 양념한 명란과 쪽파, 김가루를 차례로 올렸다. 고소한 버터 향과 비릿한 바다 내음, 다진 쪽파의 풋내, 청양고추의 매운 향이 겹겹이 쌓이며 부엌 공기를 진득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릇 속에서 오감이 모두 깨어나는 시간, 최소한의 재료가 모여 만든 한 그릇의 완벽한 풍경이다.
힘에 부쳤던 아침 육아가 잠시나마 멀어진다.
몇 가지 재료로 빚어낸 한 그릇이 마음을 채우듯, 소소한 순간도 감각을 다하면 풍성해지는 법이다.
삶은 종종 번잡하고 복잡하지만, 단순해야지만 느낄 수 있는 풍요가 있다. 최근 아이가 열심히 읽는 그림책 <아주아주 바쁜 거미(에릭 칼)>이 그러하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거미 한 마리가 조용히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말, 돼지, 개, 고양이, 염소 등 농장 동물이 차례로 다가와 함께 놀자고 말하지만, 거미는 응답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줄을 친 끝에, 단단한 거미줄 하나가 완성된다. 거미는 그 줄로 파리를 잡고, 밤이 되자 조용히 잠이 든다.
'거미줄을 친다 > 먹이를 잡는다 > 잠을 잔다.' 단순한 구조지만, 명확한 목적이 있다. 말은 없지만 묵묵히 쌓아 올린 집중의 흔적이 남아 있고, 하루가 끝날 무렵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결과가 거기 있다.
책을 처음 읽어줄 때만 해도 "이게 뭐지?" 싶었지만, 요즘은 이 책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
거미가 다른 동물들의 말에 응답하지 않고 줄을 치는 모습은, 온갖 도파민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지키려고 애쓰는 우리와도 닮았다.
육아는 끊임없는 반응의 연속이다. 아이의 요구, 감정 등에 맞춰 나를 계속 조정해야만 한다.
내 리듬을 지킨다는 것이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지만, 그래도 아침마다 짧은 틈을 내어 조금씩 무언가를 만든다. 거미가 줄을 치듯, 아주 작은 집중을 한 겹씩 쌓아 올린다. 그리고 그 몇 분의 고요가 나를 천천히 회복시킨다.
육아의 시간도 어쩌면 하나의 거미줄이 아닐까. 티 나지 않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분명 무언가를 짓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 만든 우동 한 그릇이 그 증거일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갈망하는 것은 복잡함 속에서 얻는 성취가 아니라, 단순한 속의 충만감일지도 모른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만든 단출한 식사는, 오히려 내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오늘 아침 나도 거미처럼 내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작고 조용한 식사 한 끼에 모든 감각을 기울이며, 단출한 식사에 담긴 마음은 어느새 내 하루를 붙드는 단단한 축이 되었다. 이 우동 한 그릇이 거미의 거미줄처럼 나의 하루를 지탱해 줄 것이다.
<명란버터우동>
*재료 손질
- 명란젓: 끝부분을 커팅 후, 칼등으로 밀어내어 껍질과 알을 분리함. (알만 준비)
- 계란: 노른자만 분리함.
- 기타 재료(쪽파, 청양고추 등):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송송 썰어줌
*명란양념장
- 손질한 청양고추와 명란젓, 마요네즈(1~1.5), 후추, 다진 마늘을 넣어 섞는다.
*명란버터우동 만들기
- 우동면을 삶은 후, 쯔유(1~1.5)를 넣고 섞는다.
- 양념장, 계란, 쪽파, 김가루, 버터 등을 얹는다.
*쯔유 대신 참치액 가능.
**매운 것을 좋아한다면 청양고추, 페퍼론치노 양 늘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