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빛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와 함께 낭만 차리기.
끝. 끝. 끝!
진짜 끄읕-!
드디어 방학이다.
방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남편은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꽉 껴안았다.
사건 사고가 또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방학이니까 제발 조용히 지나가길, 방학 때만이라도 한숨 돌릴 수 있길 남편과 한마음으로 빌고 또 빈다.
이번 학기는 유독 길게 느껴졌다. 학기 끝자락으로 갈수록 피로가 쌓여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고, 생전 안 하던 늦잠을 잔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동안 인터넷을 떠돌던 "둥근 해 미친 거 또 떴네 저거"라는 짤이 절로 떠오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뿐인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도 그 뒤가 문제였다. 육아에 쫓겨 아침은 허겁지겁 먹거나 아예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눅눅해진 시리얼과 다 식어버린 국물에 만 밥, 불어 터진 라면이 식탁을 지배한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학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약 한 달간의 기간은 잠깐 숨 고르는 틈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지금 나에게는 그 틈이 절실하다. 나아가 방학과 함께하는 아침, 전우와 함께 맞는 아침이니 조금 더 신경 쓴, "밥 다운 밥"을 먹어야겠다고 굳세게 다짐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방학 첫날 아침 메뉴는 시금치페스토파스타.
된장찌개를 끓일까 하다가, 학기 내내 지쳐있던 우리에게 선물 같은 한 끼를 해주고 싶어 선택한 메뉴였다. 핸드폰을 뒤적이며 예전 레시피를 주섬주섬 꺼냈다.
파스타를 만들기 전,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시금치 페스토 만들기. 시금치를 다듬고 삶아야 하는 귀찮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지만 괜찮다. 나에겐 이유식을 만들고 남은 시금치 큐브 용병이 있으니까.
큐브를 해동하고 견과류, 올리브오일, 소금을 넣고 믹서기에 돌리자 곱디고운 연둣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싱그러운 햇살을 함뿍 머금은 연둣빛은 작년에 나갔다 돌아온 7월의 여름날을 꼭 닮아 있었다.
파스타 한 접시로 이렇게 기분을 바꿀 수 있다니, 이런 기분이라면 귀차니즘은 언제든지 오케이다.
페스토만 준비되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새로 산 세라믹 프라이팬에 페스토와 갓 삶은 면을 살살 버무리자 초록빛이 금세 입혀진다. 여기에 버터에 구운 고기까지 얹으니 여름 한 접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맛에 방학하지!"
남편이 젓가락으로 파스타를 돌리며 환호한다. 불어난 라면과 눅눅한 시리얼로 아침을 버텼던 식탁이 순식간에 낭만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초록빛 한 접시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까지 주어지다니, 이보다 더한 사치가 또 있을까.
바쁜 학기 중에는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존재했던 아침이, 이제는 여름을 만끽하며 여유를 곱씹는 한 끼가 되었다.
밥을 먹으며 셋이 함께 보낼 이번 여름방학 계획을 세웠다. 작년에는 갓 태어난 아이와 허둥지둥 보낸 여름방학이었지만, 올해는 조금 더 웃고 즐겨도 되지 않을까.
- 진짜 제주도 갈까? 아니면 남해? 충청권도 괜찮을 것 같아.
- 아무렴 어때, 뭐가 됐든 이번 여름방학은 집에 안 있을 거야. 밖에 나가서 세상 구경해야지.
- 내일 곤충 박물관부터 가보자. 근처에 생태 놀이터가 있대.
최근 나비에 푹 빠진 아이를 위해 며칠간 발품을 팔며 모은 리스트를 남편에게 공개했다. 그 와중에 이걸 또 했단 말이야? 못 말려 진짜. 웃음이 터진 남편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이런 단순한 준비조차도 우리를 설레게 하다니 여름은 여름이었다.
낭만을 찾고 싶다는 건, 사실 하루를 더 소중히 살고 싶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매일이 반복 같아도 그 안에는 다시 오지 않을 여름이 있고, 다시는 똑같이 웃지 않을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래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페스토까지 만들어 파스타를 먹는 게 아닐까. 낭만을 찾기 위해서.
방학이 끝나면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하루를 버티겠지만, 적어도 이번 여름만큼은 자주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와, 우리 오늘 낭만 미쳤다."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시금치 페스토
- 시금치는 세척 후, 굵은소금을 넣고 2~30초간 데쳐줌.
- 데친 시금치, 올리브오일(8~9), 견과류(호두, 잣, 땅콩 등), 소금(1)을 넣고 믹서기에 갈기
*시금치 페스토 파스타
- 굵은소금(1)을 넣고 파스타 면을 삶기(8~9분).
- 팬에 올리브 오일(1), 편마늘을 넣고 볶기.
- 삶은 파스타, 면수(1~2), 페스토(2)를 넣고 섞기.
*뿌리채소는 흙먼지가 많아서 2~3번 헹구며 꼼꼼하게 세척하기.
*간이 부족한 경우, 치킨스톡이나 소금, 참치액젓 추가하기.
*페스토를 만들 때, 소금(0.5~1)을 넣어도 면에 비비면 생각보다 싱겁습니다. 기호에 맞게 조절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