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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섭 Nov 23. 2024

숙취가 죽여주는 하루

금주를 생각한 이유 (3)

 머리에 심장이 있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두근거림이 심해지더니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몰려왔다. 어제 먹었던 술이 독이 되는 순간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술 자체가 화학적인 독이 맞다. (술 = 물 + 에탄올) 해장(해독)을 해야 속이 괜찮아 질듯 했다. 하지만 몸이 버티지를 못했다. 해장은 둘째치고 물 한 컵만 벌컥벌컥 먹고 독에 중독된 사람처럼 쓰러졌다.  


 평일이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쉬는 날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눈부신 햇살에 얼굴을 찡그리며 겨우 일어났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운동하고, 책 보고, 글 쓰면서 나름 '갓생'을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 하루 만에 근육은 말라비틀어지고, 머리는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멍청했다. 뇌가 없는 애벌레처럼 하루종일 침대와 소파, 땅바닥만 기어 다녔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면 속에서 알코올이 또다시 올라오기 때문이다. "오웩" 물 한 컵을 더 마셨는데 온몸이 짜릿했다. 남아있는 알코올이 온몸의 혈관을 따라서 이동했다. '와 진짜 미치겠네' 또다시 집안 아무 곳에나 쓰러졌다.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눈을 떴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 때문에 잠을 못 잤던 여자친구가 벌써 퇴근하고 집에 올 시간이 다됐다. 아침에 혼났는데 지금까지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진심 끝장이다. '아 해장이라도 해야지.' 집에 있는 재료로 해장밥을 만들었다. 아니 그냥 대충 섞어서 끓이고, 데우고, 입 속에 집어넣었다. 나름 모락모락 김도 나고 냄새는 좋았다. 마침 배도 고파서 우걱우걱 떠먹었다. 세 숟가락 정도 먹었을 때 더 이상 먹는 걸 포기했다. (1++한우가 있었는데도 못 먹었다.) 식도까지는 어떻게 넘어가도 위에서 문전박대를 당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물이나 한 컵 더 먹고 또다시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아 내 인생이여 술을 왜 먹었을까'  

지-이잉


"오빠 나 일 끝나고 요가 갔다가 이제 집에 거의 다 옴" 여자친구 연락을 보고 눈이 확 커졌다! '오 씨 지금 몇 시지!' 누워서 시계를 보니 오후 9시였다. 아까 남겼던 밥과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또 엄청 혼날 거라 생각하니 하늘이 샛노래졌다. 치우려고 일어났는데 아직도 속은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천장은 빙글@빙글 돌았다. '졌다. 내가 졌다고. 제발 좀 사라져 숙취야‘ 나는 오늘 숙취에게 99% 이상 조져졌다. 곧 여자친구에게 확인사살을 당하겠지.  

 평소 병원에서 일하면서 항상 궁금했던 게 있다. 과연 죽음이 내 앞에 다가오는 공포란 어떤 걸까? "야야 오늘 먹고 죽는고얐!" 주마등처럼 어제의 행복했던 술자리가 끔찍하게 지나갔다. '아 죽음(숙취)이란 생각보다 더 무섭고, 두렵고, 끔찍하네‘


 비교적 빠른 나이에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프롤로그) 술 없는 삶, 친절한 금자씨


금주+10일째 (없어 보이게 하루하루 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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