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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섭 Nov 18. 2024

오늘도 술 먹고 기억을 잃었다

금주를 원했던 이유-1

 오래간만에 술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오늘 술이 왜 이렇게 달달하지? 너 생일이라 그런가?" 기분이 좋아서 빨리 먹었는데 취하지도 않았다.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는 건 언제나 순식간이었다. 친한 친구 한 명이 더 왔다. "오우 일 마치자마자 또 우리가 보고 싶어서 이렇게 먼 길까지 행차해 주셨습니까! 자 입장주!" 텐션이 한층 더 올라갔다. 친한 친구 세 명이 모이니 에너지가 더 샘솟았다. 부어라 마셔라 내일이 평일이든 아니든 어차피 나는 쉬는 날이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먹었다. 먹다 보니 세 병이 몇 병이 됐는지 개수도 세지 못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양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 숨이 막히고 너무나도 괴로웠다. 죽을 것 같이 소리를 꽥꽥 질렀다.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얼핏 주변을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 시키들은 나만 빼고 다 어디로 튀었어" 자세히 보니 친구들 뿐만 아니라 아무도 없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주변 배경이 어두 컴컴 해졌다. '으아악' 소리를 외치며 눈을 떴다.


 다행히 꿈이었다. 목이 굉장히 말랐던 거다. "뭐야 집에 어떻게 들어왔지? 아 일단 물.. 물 먹어야지" 몸을 비틀거리면서 주방으로 갔다. 정수기에 물 받는 버튼을 물렀다. 오른손이 굉장히 아파왔다. '뭐지?' 하면서 오른쪽 손바닥을 보는데 상처가 나있었다. 생각을 아무리 끄집어내 봐도 기억에 없었다. 오히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올 뿐이었다. 그때 작은방에서 화장을 하고 있던 여자친구가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고, 이제 일어났나. 잘한다 잘해. 니 어제 기억 하나도 안 나제? 언제는 이제 술 그렇게 안 먹는다고 말하더니 매번 똑같지 뭐. 어제 또 얼마나 지랄하다가 잔 줄 알아? 맨날 술 그렇게 안 먹는다고 약속하면 뭐 하냐. 지키지도 못하는 거. 이제는 그냥 술 많이 먹는다고 해! 어제도 오빠 때문에 잠도 많이 못 잔 거 알아? 새벽 늦게 들어와서 집 비번도 모른다고 전화해서 깨우고, 동네방네 시끄럽게 떠들고, 말도 없이 친구 데리고 오고. 아니 갑자기 데려오면 어떡해. 나 옷도 편하게 입고 있었는데. 아니다 됐다 말해봤자 뭐 하냐. 어차피 기억도 안 날 텐데."


 일어나자마자 양손을 곱게 배 위에 모으고 여자친구의 하소연을 듣고 있었다. 아직 몸이 비틀거리지만 최대한 사과의 진전성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균형을 잡는데 집중했다. "미안해. 잘못했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어제 얼마나 지랄 맞았는지라도 좀 알면 구체적으로 사과하겠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이 안 났다. 두통만 더 심하게 몰려왔다.


 여자친구가 출근한다고 집 밖에 나갔다. 아직 술이 덜 깨서 너무 힘들지만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대충 후리스랑 모자를 눌러쓰고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아파트 정문을 나가서까지 여자친구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버스 타는 곳까지 쫓아가려고 했다. "아 됐어. 이따가 말해. 일단 집에 들어가." 그 말에 더 이상 쫓아가지 못하고 여자친구를 보냈다. 나는 다시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고 싶어서 폰을 찾았다. 폰 뒤편이 깨져 있었다. "아씨 이건 또 왜" 폰을 켜고 전화기 모양을 눌렀다. 내가 걸었던 여러 통의 전화가 여자친구랑 친구들을 향해 막 찍혀있다. "아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새벽에 무슨 전화를 또 한 거야" 이번에는 카톡을 봤다. 새벽에 알 수 없는 말들을 친구에게 막 보냈다. 그중 한 명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야 일어나면 네 여자친구한테 싹싹 빌어라" 아무래도 이 친구가 어제 나를 집에 데려다줬나 보다.


 이제는 술 먹을 때 언제부터 기억이 안 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두통만 더 심해졌다.

월,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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