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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월급쟁이 부자의 비밀

소설연재

by 태섭
인생이란, 어쩌면 모든 걸 잃는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여백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씨름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쓰러졌기 때문에, 그는 더 낮은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유찬식은 매일 새벽 5시, 알람 없이도 눈을 뜬다. 마치 그의 몸속엔 특별한 기계 장치가 들어있는 듯했다. 아내는 농담처럼 그를 ‘인간 시계’라고 불렀다. 쉬는 날에도, 휴가 때에도 5시면 변함없이 그의 눈꺼풀은 열렸다. 몸이 기억하는 규칙, 그 작은 습관이 지금의 찬식을 만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항상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도 살았다."


침실을 조용히 빠져나온 찬식은 아내를 깨우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익숙하게 냉장고에서 사과 두 개와 당근 한 개를 꺼내 씻은 뒤, 착즙기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낮은 기계 소리와 함께 신선한 과즙이 천천히 컵을 채웠다. 그는 이 시간이 좋았다.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조용한 순간, 그 고요함 속에서 한입 가득 신선한 주스를 마시는 느낌이 상쾌했다. 주방 싱크대 앞 창문을 살짝 열자 서늘한 아침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찬식은 잠시 눈을 감고 그 차가운 느낌을 음미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주스를 다 마신 후, 그는 거실 통유리 창 앞으로 다가섰다. 창밖으로 한강의 전경이 펼쳐졌다. 과거 힘들었던 날들의 조각이 한강물 위에 잠시 떠 있는 것 같았다. 그 조각들을 견딘 사람만이, 이 고요한 풍경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다. 찬식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이 풍경 앞에 설 때마다, 그는 늘 조용한 감사로 마음을 채웠다.


아직 태양이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새벽, 강물 위에는 옅은 안개가 자욱했다. 그 위로 아침 햇살이 은은히 비치며 전체가 반짝였다. 멀리 보이는 강변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매일 보는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이 안개와 햇살은 그에게 늘 새로운 기분을 안겨 주었다.


2년 전, 그는 지금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신중하게 이 아파트를 선택했다. 병원에서 걸어서 정확히 10분 거리, 34평형 하이엔드 브랜드로 지어진 이 신축급 아파트는 지금 두 배 가까이 가격이 올랐다. 그때도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았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집을 마흔 초반에 이미 손에 넣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하지만 찬식은 이 집을 자랑하거나 과시한 적이 없었다. 집은 그저 그의 성실함이 만들어낸 작은 결과물일 뿐이었으니까.


찬식은 창밖의 풍경을 조금 더 감상한 뒤, 천천히 몸을 돌려 주방으로 돌아왔다. 익숙하게 커피를 내리고, 미리 삶아 둔 계란 두 개와 구운 호밀 토스트 한 조각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혼자서 조용히 먹는 아침이었다. 이 시간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그는 출근 준비를 위해 옷을 차려입었다. 걸려있던 옷의 대부분은 무채색이었다. 그에게 옷이란 깔끔하기만 하면 그만이었고, 덕분에 선택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병원으로 향했다. 빠르게 걸으면 겨우 5분이면 도착했지만, 그는 언제나 출근 두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조금 더 걷고,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출근길에 찬식은 늘 같은 커피숍에 들렀다. 새벽부터 문을 연 그곳은, 화려한 간판이나 특별한 인테리어는 없지만 가성비가 뛰어난 곳이었다. 가격표에는 아메리카노가 단돈 1,500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솔직히 한 잔에 4,500원 하는 곳이 분위기도 더 좋고, 더 맛있었지만, 그는 늘 이곳을 택했다.


'하루 3천 원. 작지만 매일 모으면 한 달에 9만 원, 1년이면 109만 원. 18년 동안 복리로 투자하면 3천만 원이 넘는다. 결국 커피 한 잔이, 부동산 한 채의 씨앗이 되는 셈이야.'


이처럼 작지만 꾸준한 습관이 지금의 그에게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줬다. 처음부터 그가 투자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유찬식도 젊었을 때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심지어 그 실패는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컸다.


찬식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큰 덩치 덕분에 주변의 시선을 받는 게 익숙했다. 열네 살에 이미 키 181cm, 몸무게 88kg였으니, 씨름부에 들어가는 건 자연스러웠다. 전국 대회에 출전할 만큼 실력 또한 뛰어났고, 스무 살엔 용인대학교 체육학과로 스카우트되어 씨름계의 기대주로 단숨에 떠올랐다. 스물네 살, 전국 씨름판을 휩쓸며 백두장사 3관왕, 체급 제한 없이 모든 선수가 출전해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 '천하장사'에서도 우승을 했다. 그는 ‘전성기의 이만기’라 불렸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건 당연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앞으로 '씨름계의 전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도 그렇게 믿었다. 모든 것이 뜻대로 잘될 거라고.


하지만 인생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두운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훈련을 위해 체육관으로 가던 그의 차량이 갑자기 미끄러졌다. 미처 방향을 틀기도 전에 눈앞으로 다가오는 덤프트럭의 헤드라이트가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유찬식 님. 이제 정신이 좀 드세요? 여기는 병원입니다. 중환자실이에요."


그가 의식을 찾은 건 정확히 사고가 난 지 3일 후였다. 주위에서 들리는 수많은 기계음과, 온몸에 연결된 차가운 감촉이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졌다. 담당 의사의 얼굴은 비장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만, 운동은... 앞으로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그 한 마디가 그의 인생 전부를 앗아갔다. 몸이 망가진 것보다 더한 건 마음이 산산조각 난 것이었다. 운동 없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함과 두려움에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평생 동안 해온 게 운동뿐인데... 난 이제 뭘 하면서 살아야 하지?'


병실에서의 나날은 말 그대로 '존재만 하는 시간'이었다. 눈을 떠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눈을 감아도 내일이 두려웠다. 하루는 밤과 낮의 경계 없이 흘렀고, 침대 위에서 그는 마치 물 위에 띄운 조각배처럼 흔들렸다. 체력도 급격하게 약해졌다. 식판을 보고도 숟가락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고, 간호사들이 들여다보는 소리도 점점 희미해졌다.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게 무서웠다. 그의 눈에 병원 생활은 온통 회색빛으로 흐렸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백한 병실에서 선명하게 움직이는 존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환자들을 분주히 오가는 간호사들의 하늘색 유니폼이 서서히 찬식의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서도 늘 웃는 얼굴로 그의 병실을 찾는 간호사가 있었다.


김민지는 매일 그의 상처를 세심히 소독하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요!”


사실, 나아지는 속도는 더디었지만 민지의 말엔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찬식의 굳게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씨름 선수였다고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래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더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점점 좋아지시는 모습이 역시 운동 선수라 그런가 봐요. 회복력이 장난 아니시네요!"


민지는 그를 동정이 아닌 존중으로 대했다. 그 진심 어린 존중과 격려가, 다시 무언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줬다.


"제가 보기엔 찬식 님은 포기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씨름에서도 그랬을 거고, 지금도 그럴 거예요. 그런 끈기가 어디서든 빛을 발할 거예요."


그 말이 찬식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자신이 가진 강점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깨달음. 단지 그것을 발휘할 무대가 바뀔 뿐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무대가 어쩌면 병원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가능성이 보였다.


퇴원을 앞둔 어느 날,

찬식은 결심한 듯 민지에게 물었다.


“민지 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할 말이 있어서요..."


민지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금세 미소를 띠었다.


“정말 관심 있으세요? 솔직히 쉽지 않은 길이에요, 특히 남자 간호사는요...”

“저는 쉬운 길을 찾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서요.”

"음... 그러면 제가 자세히 좀 알려드릴까요?"


찬식이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건 단순히 감동해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회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직업. 자신처럼 몸이 아팠던 이들의 눈빛에 천천히 기운이 돌아오는 순간. 그런 장면을 매일 볼 수 있다면, 그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찬식은 퇴원하자마자 간호학과 편입 공부에 돌입했다.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그의 끈기와 성실함이 공부로 이어졌다. 씨름장에서 땀 흘리던 시간만큼이나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


스무다섯 살에 간호학과에 입학한 그는 동기들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하나를 새롭게 이루었다는 성취감만큼은 누구보다 강력했다. 그런 열정 덕분에 스물아홉 살에 당당히 하늘색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대학병원에 입사했다. 그가 본인의 첫 환자에게 건넨 말은, 민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바로 그 말이었다.


“환자분,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좋아 보이세요.”


환자의 미소를 보며 찬식은 이 순간이 왜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자신처럼 쓰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작은 감정에서 출발했지만, 곧 그는 확신하게 됐다. 간호는 더 이상 넘어지지 않기 위한 ‘삶의 기술’이라고.


인생이란 어쩌면 모든 걸 잃는 순간에도 다시 시작할 여백을 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씨름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쓰러졌기 때문에, 그는 더 낮은 곳에서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찬식은 어느 날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병원 밖 식당에서 선배 간호사와 국밥을 먹고 있었다. 소주까지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던 선배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캬, 진짜 쓰다 써. 요즘 결혼하려고 집 알아보는데... 경기도 외곽으로 내려가야 할까 봐. 우리 월급으로 서울에서 내 집 마련하는 건 꿈도 못 꿔. 죽을 때까지 병원에서 일해도 똑같을 거야.”


국밥집에서 나온 찬식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병원 건너편에 있는 구축 아파트였다. 외관은 오래되어 보이지만, 금액은 20억이 넘어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배처럼 오랫동안 일해도... 저 아파트 방 한 칸 마련할 수도 없구나. 이런 삶이 초라한 걸까.’


그의 가슴은 답답해졌다. 선배의 푸념이 귓가를 맴돌았다. 자신에게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찬식은 다시 도전 의지를 불태웠다. 퇴근 후 도서관을 찾았고, 서점에 들러 부동산 책을 사기 시작했다. 낮밤 구분 없이 힘든 일정에도 그는 수십 권의 책을 독파하며 투자 강의를 듣고 부동산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얼마 후 서울 당산역 앞 3,000세대 아파트를 4억에 분양한다는 말에, 그동안 모은 5천만 원을 들고 ‘지역주택조합’에 계약금을 넣었다. 반년이면 집이 올라간다는 말을 믿었지만, 두 해가 지나도록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끝났다. 그의 연봉 2년 치가 허공에 사라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찬식은 깊은 밤마다 혼자 울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눈앞에서는 사라진 5천만 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 돈이면 나 때문에 고생한 부모님께도 효도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성급했을까?”


그 순간, 부모님의 희생이 떠올랐다. 자신의 꿈을 위해 힘겹게 버텨온 긴 시간들이 어깨 위로 무겁게 내려앉는 듯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몸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이 있었다. 바로 씨름판에서 수없이 쓰러지고 일어났던 시간들, 갑작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또다시 넘어졌을 뿐이야. 씨름판에서도 항상 쓰러짐 뒤에 다시 일어났어. 그게 나야.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다음 날 그는 서점에서 새 노트를 샀다.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한 번 실패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의 성공으로 인생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그 후로 찬식은 실패를 기록하는데 더 집요해졌다.


1) 감정적 결정 –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

2) 정보 부족 – 지역주택조합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아보지 않았다.

3) 분산 투자 부재 – 전부를 한 곳에 넣은 무모함.


작은 교훈들이 쌓여갈 때마다, 과거의 큰 실패가 오히려 의미 있는 자산으로 느껴졌다. 그의 노트는 매일 두꺼워졌고, 어느새 실패는 그의 든든한 교과서가 되었다.


찬식은 이번에 청약으로 눈을 돌렸다. 청약 점수를 위해 몇 년 동안 작은 원룸에서 버티며 살았고, 월급의 대부분을 꾸준히 청약 통장에 넣었다. 현실적인 전략을 위해 매일 강의를 들었고, 휴일엔 현장을 찾아다니며 아파트 주변 환경을 직접 확인했다. 그렇게 떨어진 횟수만 열 번.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에게 이런 문자가 도착했다.


[web발신] 유찬식 님. 축하드립니다. 마곡 ooo 84A type에 당첨되셨습니다. (모델하우스, APT2 you에서 확인바람) 동, 호수는 익일 자정에 '청약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서울 강서구의 신축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허허벌판이었던 그곳은 처음에는 모두가 눈길도 주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입주 5년 만에 시세차익은 10억 원이 되었고, 그는 합법적인 양도세 면제 방법까지 세웠다. 실패로 얼룩졌던 시간들이 처음으로 보상받는 짜릿함이 밀려왔다.


찬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울과 수도권의 작은 전세·월세 아파트를 추가로 매입하며 임대 수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마침내 16년이 지난 지금, 그는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그럼에도 찬식은 여전히 간호사 가운을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 이유는 그만의 비밀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순자산 30억이 넘는 가진 사람이 왜 여전히 3교대 근무를 하며 밤을 새우는지, 왜 환자들의 불평과 고통을 매일같이 마주하는지. 그의 아내조차 가끔은 물었다.


"여보, 이제 그만 쉬어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잖아."


그럴 때마다 찬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 쉬고 있어."


그에게 병원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었다. 그곳은 그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곳이었다. 환자들의 회복을 지켜보는 일은 그 어떤 투자 수익보다 값진 보상이었다. 게다가 병원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은 그의 투자 습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3교대 근무는 그에게 시간의 소중함을 가르쳤고, 환자들의 삶과 죽음은 돈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웠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을 돕고 싶었다. 특히 요즘 들어 퇴사를 고민하는 젊은 간호사들이 많아졌다. 그들에게 찬식은 말했다.


"퇴사가 답이 아니라, 퇴사해도 괜찮을 만큼의 준비가 답이야. “


병원에 도착한 찬식은 탈의실로 향했다. 오늘도 가장 먼저 출근했다. 탈의실 한쪽 구석에 있는 책상에 앉아 오늘의 투자 일지를 적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그는 오히려 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돈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인생을 지켜주는 든든한 안전장치였다. 그리고 책을 한 권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그만의 시간이었다.


그때 탈의실 문이 열렸다.


인기척을 느낀 찬식은 고개를 들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을 반쯤 후드로 묻은 하주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눈은 덜 깬 듯 반쯤 감겨 있었고, 몸은 휘청였다.


‘오늘은 좀비처럼 출근한 모양이네...’


찬식은 하주의 얼굴을 보며, 무언가 많이 지쳐 보인다고 느꼈다. 아마 전날 잠을 거의 못 잔 듯한 얼굴이었다. 찬식은 천천히 책을 덮고, 조용히 하주에게 다가갔다.


“하주야, 오늘은 많이 일찍 왔네? 근데... 너 모습이 왜 그러냐?”

"어?... 찬식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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