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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올인원

내가 더 이상 사지 않는 두 가지 : 펜과 노트

by 파슈하

그야말로 스마트하다. 스마트폰 이야기다. 이것이야말로 올인원의 결정체임이 틀림없다. 이 사실은 그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화통화와 메시지 전달같이 핸드폰 본래의 기능보다도 더 잘 쓰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바로 스케줄 관리와 결제 기능이다.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구입해서 손에 쥐었을 때가 생각난다. 전자기기를 사고 그렇게 끙끙 앓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야말로 무한한 세계가 손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고, 그것을 다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내쪽이었다.



본디 해가 바뀔 때마다 그 핑계로 종이 다이어리를 사 모으는 나였지만 도대체가 그것들은 끝까지 쓰이는 일이 없었다. 쓰다 남은 다이어리들의 무덤은 책꽂이 한켠이었다.


기록하고 싶은 자아와 가방 경량화를 이루고 싶은 자아의 충돌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후자 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손이 잘 닿는 곳에 손이 잘 가는 메모장 하나 정도는 들고 다닐 필요가 있었다. 얇은 먼슬리 다이어리, 아주 작고 얇은 메모장, 포스트잇 등등 다양한 시도와 실패가 있었으나. 이 모든 노력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종결되었다.



일단 무료로 다양한 캘린더 어플을 다운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디자인도 예쁘고 수많은 스티커 기능을 쓸 수 있는 다이어리 어플을 다운받아 사용했었다.


그런데 핸드폰을 교체하게 되면 그 모든 세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영 귀찮았다. 2~3년에 딱 한 번만 해야 하는 과정인데도 이 과정이 영 순탄치가 않았다.



결국 핸드폰 내에 있는 기본 어플인 <캘린더> 앱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갤럭시 핸드폰을 사용하는데, 기본어플인 캘린더 앱은 핸드폰이 교체되더라도 알아서 구글 캘린더와 삼성계정에 연동이 되어 별다른 설정을 하지 않더라도 이전에 썼던 데이터들이 자동으로 백업되고 복구되어 상당히 편리했다.


갤럭시 핸드폰 특유의 S펜과 S노트 어플 역시 새로운 메모 습관에 한몫했다. 이 둘 모두 삼성계열 전자기기에서는 자유롭게 동기화와 백업이 이루어져서 따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이제는 메모를 관리하는 방법도 체계화가 잡히게 되어,

ㅡ 길게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S노트

날짜가 정해져 있는 스케줄은 캘린더앱

단기적으로 바로 실행해야 하는 것들은 캘린더 앱에 S펜 기록모드를 이용해서 메모해 둔다.



그리고 핸드폰 바탕화면에 위 3개의 위젯을 띄워두면 메모를 잊어버리는 일 없이 어디서든 메모를 하고 불러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한 화면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므로, 주기적으로 메모의 내용들을 체크해서 최대 2페이지 이내의 내용만 항상 담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외에 사진과 함께 추억이나 생각을 길게 남기고 싶을 때는 블로그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워져서 종이다이어리를 사 볼까 하는 마음에 서점 매대에서 수많은 다이어리들을 뒤적거려 보곤 하지만, 역시 손 안의 무한한 메모지를 포기할 수 없어 이내 그만두어버리곤 한다.


무엇보다도 첫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잠깐 친정집에 지내면서 신혼집에 가져가지 못했던 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큰맘 먹고 지금까지 쓰고 모아 왔던 모든 다이어리를 전부 버려낸 적이 있기 때문에 다시 실체가 남는 무언가를 만들어두고 싶지가 않았다.


'나중에 읽어보면 추억이 될 거야'라는 어렸을 적 나의 다짐과는 달리 그 다이어리들은 버려지기 직전에서야 드디어 한 번 펼쳐져 보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기에.


이사할 때나 집 정리할 때 추억보다는 짐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한 번 종이 노트들을 버려본 경험이 있어서일까, 2020년부터 나는 사무실에서의 업무 다이어리도 전부 전자화시켜 버렸다.


책상에서 종이달력과 업무수첩을 치우고 간단한 일정관리와 단기 처리할 메모들은 컴퓨터 바탕화면 달력 위젯에, 장기로 기억해야 할 키워드들은 포스트잇에 적어 서랍 안쪽에 붙여놓았다. 길게 기억해야 할 것들은 워드 프로세서 파일 하나에 전부 키워드와 함께 적어두어 Ctrl+F로 찾을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바탕화면에는 지금 작업해야 하는 파일은 왼쪽 바탕화면에, 향후 작업해야 하는 파일은 오른쪽 바탕화면에 두었다. 완료된 업무는 별도 폴더로 옮겨두어 바탕화면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니, 깜빡 잊어버려서 업무 공백이 생기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가끔은 종이 위에서 필기구마다 저마다의 울림을 주었던 그 느낌이 그립기도 하다. 스티커를 붙이며 하얀 종이가 화려하게 번져갔을 때의 기쁨이 아쉽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기록에 대한 철칙과 철학이 생겼으니.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대로 쭉 갈 것 같다.




이 기록에 대한 아이디어 메모와 글 초고 역시 모두 S노트에서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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