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 위에서만 활약하는 게 아니다
예전에 골방환상곡이란 웹툰에서 '치약'에 대해 다룬 회차가 있다. "치약으로 뭘 할 수 있죠?"란 질문에 보통 사람은 "이를 닦죠!"라고 대답하는 반면, 예비역들은 "어디 보자..." 하면서 손가락을 꼽는 장면이 나온다.
미니멀리스트의 치약 활용법은, 후자에 가깝다. 이도 닦고, 수전도 닦고, 세면대도 닦고, 타일도 닦는다.
보통 이 '치약 활용법'은 어느 순간부터 독한 화학물질 청소세제를 두려워하는 주부들로부터 알음알음 전해져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청소살림팁을 알려주는 영상이나 책에서도 등장하게 되었다. 주된 사용법은 '유통기한 지난 치약 활용법'이긴 하지만 미니멀리스트의 집에 유통기한 지난 치약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그냥 쓰고 있는 치약을 조금 덜어내어 청소하는데 갖다 쓴다. 이때에는 사용하는 스펀지에 치약 입구가 닿지 않는 게 중요하다. 손으로 살짝만 짜내서 툭툭 털면 딱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치약만 톡 떨어진다. 떨어뜨린 치약을 수세미에 묻혀서 물과 함께 풀어내면 풍성한 거품이 인다.
이걸로 수전도 닦고, 세면대도 닦는 것이다. 물론 새 치약을 청소용으로 쓰는 것이 조금 아까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유통기한 지난 치약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일이다. (만약 집에 오래된 치약이 있다면 이렇게 활용하시라)
청소 후 민트빛 개운한 향이 욕실에 가득 차는 것은 덤이다.
욕실세제는 치약으로 대체했으니 이번엔 청소솔이 문제다.
그래도 요즘엔 다이소나 자주, 무인양품에 하얀빛 욕실용 청소브러시를 팔긴 하지만 예전에는 이상하게도 청소용 브러시는 녹색같이 눈에 띄는 색이 아니면 안 된다고 결심한 듯, 채도 높은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용달블루, 고무다라이레드, 단무지옐로 같은 고채도의 제품이 많았다. 물론 그것들이 유행하던 시절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겠지 싶다. 플라스틱 제품의 경우 흰색 제품을 만드는 게 지금보다는 더 어려웠을 수도 있고, 사용자 입장에선 금방 더러워지는 흰색 제품이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쨍한 색의 브러시가 더 잘 팔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미니멀과 뉴트럴이다. 흰색, 옅은 회색의 브러시가 인기가 좋다. 다이소의 등장으로 청소도구 가격도 저렴해져서, 더러워진다면 오히려 교체의 기회로 여긴다.
하지만 미니멀리스트는 이 조차도 거부한다. 나의 욕실 도구는 교체 후의 칫솔과 교체 후의 주방 수세미 되시겠다. 어차피 쓰고 버려야 할 칫솔들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다.
그조차도 다 쓴 칫솔이 쌓여있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가족별로 교체 시기를 따로따로 정해두었다. 둘째 아이 어린이집에서는 홀수달 첫째 주에 '새 칫솔을 보내주세요'라고 연락이 오는데, 이것이 나의 기준점이 된다.
홀수달에는 여자들 칫솔 바꾸는 날. 둘째 아이 어린이집에 새 칫솔을 보내면서 집에 있는 칫솔도 교체를 해 준다.
홀수달 보름에는 내 칫솔을 교체한다.
짝수달 첫 주에는 아들의 칫솔을, 보름에는 남편의 칫솔을 교체한다.
이렇게 하면 딱 두 달에 한 번씩 새 칫솔을 쓸 수 있다.
칫솔을 교체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청소솔로 소진을 하는데, 제일 먼저 부엌 개수구 부분을 닦고, 그다음엔 건식으로 관리하는 거실 화장실, 그리고 다음엔 안방 화장실을 닦는다. 화장실에서는 수전, 세면대, 줄눈, 변기, 하수구 순서로 사용한다. 그리고 청소를 마친 칫솔은 미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는다.
나는 깔끔한 욕실을 만들고 싶어서 샴푸도 끊은 사람이다(현재는 비누를 쓴다). 내 자신의 취향까지 바꾸어가면서 만든 깔끔한 욕실에 찝찝한 청소도구를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치약과 다 쓴 칫솔, 그리고 다 쓴 수세미를 활용하면 청소도구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도 깔끔한 욕실을 유지할 수 있다.
화장실에 있는 유일한 청소도구는, (역시나) 새하얀 색의 스퀴즈 딱 하나뿐이다. 스퀴즈 대신 수건이나 바닥 물기를 걸레를 닦는 분도 있는데, 나의 성실함은 안타깝게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다.
욕실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습기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것.
습기는 물건이 하나라도 적어야 관리가 쉬워진다. 그것이 비록 청소솔 하나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