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회용 올인원

그야말로 일당백

by 파슈하

깔끔한 주방의 기본 조건은 무엇일까?


10평대 작은 투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주방에는 이것저것을 놓지 않는 것>이 의외로 제일 중요하단 것을 깨달았다.


토스터기든 전기포트든 그것이 상판 자리를 잡아먹고 있다면, 그래서 요리를 할 공간 자체가 부족하게 된다면 요리 의욕은 뚝 떨어지고 만다.

차라리 프라이팬에 식빵 굽고 냄비에 물을 끓여 요리할 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대신 (성능은 좀 떨어지더라도) 토스터와 오븐과 전자레인지가 함께 되는 기계를 두고, 세척이 용이한 작은 스텐 냄비를 두었다.

프라이팬은, 적당히 큰 28cm 제품으로 하나 구입해서 코팅이 벗겨진 것 같다면 바로바로 교체한다.



프라이팬, 냄비, 그리고 소형가전들을 제외하고 나면 더 이상 깔끔한 부엌을 위해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복병이 하나 더 숨어있다.


바로 <일회용품>.


보통이라면, 평소에는 서랍에만 있어서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지만 10평대 주방은 서랍도 참 작다. 우리 엄마가 했던 것처럼 비닐도 사이즈별로, 랩지도 사이즈별로 '언젠간 쓰겠지'란 생각으로 채워놓고 보면 또다시 숨이 턱 막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또 줄여봤다. 랩지는 전자레인지 덮개로, 종이포일은 법랑접시로 사용하면서 없앴다. 다만 일회용 위생백은 계속 쓸 일이 생겨서 하나 두기로 했다.



일회용 위생백 역시 중간 사이즈(25X35cm)만 두었다.

담아둘 게 많으면 그냥 한 장을 더 사용한다. 공간이 많이 남으면 그냥 남는 대로 둔다. 마른 빵이나 물기 없는 야채를 보관했던 비닐은 잘 말렸다가 또 사용하기도 한다.


기저귀 쓰는 아기가 있는 집이지만 밀폐 쓰레기통은 따로 쓰지 않으므로, 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담았던 봉투는 굳이 정성스럽게 털어내거나 씻지 않고 잘 두었다가 달걀 껍데기이나 기저귀를 담아서 버린다.


고기 소분해서 담아놓았던 비닐은 해동하면서 핏물이 묻게 되어 오래 보관할 수는 없지만, 바로 프라이팬의 기름을 닦아낸 천이나 키친타월을 담아서 버리면 굳이 비닐을 더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일반 반찬통에 김치를 보관하게 된다면 비닐을 반 잘라서 씌우면 굳이 랩지를 따로 쓰지 않아도 된다.


주먹밥을 할 때 맨손에 기름이 묻는 것이 싫다면 위생백을 손에 뒤집어쓰고 조물조물 쥔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다.


너무 오랜만에 욕실청소를 하게 돼서, 맨손으로 청소하기가 싫을 때 역시 그냥 위생백을 손에 뒤집어쓰고 닦는다.

청소용 고무장갑과 청소 브러시 대신 폐비닐에 교체 수세미를 쓴다

청소가 끝나고 다 쓴 수세미와 머리카락 뭉치들을 잡으면서 뒤집으면 아주 깔끔하게 뒤처리도 할 수 있다.


만약 지퍼백처럼 편리하게 자주 여닫을 일이 생긴다면, 위생백에 비닐집게로 대신한다.





비닐은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물론 최고이긴 하다.


하지만 살면서 한 번씩 필요할 때가 자주 와서 아예 안 둘 수는 없다면, 가장 잘 사용하는 것 딱 하나만 두고 다용도로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어떨 때는 보조반찬통으로, 어떨 때는 장갑으로, 어떨 때는 파우치로, 어떨 때는 쓰레기통으로.


일당백도 이런 일당'백'이 없다.

keyword
이전 12화반팔 올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