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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Aug 15. 2024

#9 (관점) - 변화와 혁신

Forever!

변화와 혁신 – Forever!


‘Deep Change or Slow Death.’ 이 말은 2000년 초반 미국 전략컨설팅 업계에서 회자되었던 표현이다. 기업이 큰 변화가 없다면, 서서히 죽어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큰 영감을 받았다. 스티브 잡스의 눈빛을 보았을 때 팬이 되었던 것처럼, 이 말의 의미에 매료되었다.


사람과 조직은 물과 같아 한 곳에 고이면, 상하고 썩게 된다. 고인 것들은 절박함이 없어지고, 목표가 없어지고, 혁신이 필요 없게 된다. 우리 안의 안이함은, 이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할 때 누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것을 꼭 고려해야 한다. 어떤 세력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어떻게 바꾸는 것을 공감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작업에는 To Be가 필요하다. 다만 To Be의 모습이 이상적인지, 타협된 목표인지는 그 조직의 Identity에 달려있다.


그런데 조직 구성원과 공감의 과정이, 현실에서는 만만하지 않다. 혁신 세력은, 기득권 세력과의 헤게모니 싸움이 불가피하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은 힘들다. 비록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강한 저항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 전략적 변형을 만드는 유연함, 의사결정권자의 신뢰가 꼭 필요하다. 나는 몇 번의 힘들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화학회사 – 시황 딜레마

경기 사이클 산업의 경우, 시황이 어려울 때는 백약이 무효다. 원가절감을 하면서, 우선은 생존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큰 역설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임직원은 생존에 동반되는 고통분담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때 리더는 비전과 전략으로 어려운 터널을 언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지를 임직원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을 위한 고통분담의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진다.


화학산업에서 과잉공급 이슈는 어제, 오늘의 이슈가 아니다. 시황이 나빠지면, 사이클 장치산업의 고통은 시작된다. 경기 정점에 높은 성과급을 받은 뒤 경기가 급랭하면, 조직관리는 무척 어려워진다. 기본적으로 임직원은 직전 연도에 높은 성과배분을 받았는데, 금년에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화학사 CFO에 부임했던 해, 바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직전 연도에는 최고의 성과급으로 모두가 고무되었다. 내가 부임했던 해 3월경 연간 손익전망을 해보니,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비수기의 몇 개월은 적자가 예측되었다. 나는 CFO로서, 회사 전반적으로 위기감 확산해야 했다. 혁신활동 추진, 고통분담 등 비상경영체제를 드라이브해야 했다.


나는 직원 몇 명을 선발해, 혁신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했다. 내가 직접 이 활동을 관리해 가면서, 수위 조절을 했다.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최고 경영진과 조율 후 실행에 들어갔다. 좋은 취지였지만, 박수받지 못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라는 시각도 있었다.


직급 간의 온도 차이도 있었지만, 나는 변화와 혁신은 조직 전체가 공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다. 그 회사는 그해 말에 다른 그룹에 매각되었다.


건설회사 – 낙관과 책임

나는 물산 건설로 이동했다. 몇 군데 해외 대형 PJT에서, 큰 적자를 내던 사업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임초기 경영현황을 파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사업부가 어려운데 현안에 손을 제대로 대지 못했고, 신규 PJT의 문제점이 나올 우려도 있었다. 사업부 전략회의 때, 나는 사업부 경영 실상과 액션플랜 중심의 대책을 발표했다. 건설부문 전사에서도 우리 사업부를 지켜보기 시작하면서, 고무적인 분위기가 초기에 형성되었다.


무엇보다 엔지니어 출신들의 큰 저항에 부딪쳤다. 혁신 프로그램을 사전교류도 했지만, 실행과정에서 대책들이 표류했다. 위기감은 엔지니어들의 낙관적인 대책들로, 그만 희석되어 버렸다. 사업부가 위기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변화와 혁신은 간데없고, 일상의 빼곡한 엔지니어링 이슈들로 다시 도배되었다. 큰 틀에서 조망되고, 해결돼야 했는데 말이다. 결국, 문제 해외 PJT들은 차질 낼만큼 다 내고 말았다.




물론 내가 주장했던 혁신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고, 적자가 크게 줄어들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의 결과에 비해 더 나빠질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영 현장에서 두 번의 혁신 프로그램을 추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글로벌 기업에서도 혁신 프로그램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 역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부족함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내가 좀 더 힘을 쏟아야 했던 포인트도 있었고, 기득권의 벽을 일부 간과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 소화불량의 찌꺼기를 속 시원히 배설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리 후배들은 혁신이 필요할 때, 꼭 제대로 도전했으면 한다. 1993년 삼성의 신경영도 그렇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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