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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만사 - 코코 샤넬

디자이너 02

by 구포국수

코코 샤넬 / 가브리엘 샤넬 (1883 ~ 1971)

샤넬은 파리 여성복 패션의 자존심이었다. 그녀는 프랑스에 묻히지 못했고, 스위스에서 영면했다. 시대의 아픔이, 그녀를 외로운 길로 가게 만들었다. 샤넬이 살던 당시에는 ‘오픈 런’이 없었다.




샤넬은 루이뷔통, 에르메스와 함께 3대 명품패션 브랜드이다. 브랜드 엠블럼은 서로 반대를 바라보며 겹쳐진 두 개의 C이다. 이것은 전설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을 의미한다. 영하고 캐주얼한 느낌을 주는 구찌, 펜디, 발렌시아가 와는 달리 샤넬은 격식 있고 클래식한 느낌이 강하다.


고전미를 풍기는 중후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부잣집 사모님 같은 느낌이다. 2018년까지 한 손에 검은 장갑과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칼 라거펠트가 수석 디자이너였다. 현재는 비르지니 비아르가 맡고 있다.


설립자인 코코 샤넬은 스포티하고 심플한 디자인의 여성복을 만들며,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의 옷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 현대 여성복의 시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그녀는 약 15년간 프랑스의 패션계를 떠났다. 1954년 파리 패션계에 돌아왔지만 고루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호평을 받아 할리우드 스타들이 샤넬을 입기 시작했다.


고아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의상실에서 보조 재봉사로 일하면서,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돈을 벌었다. 샤넬은 코코리코라는 노래를 즐겨 불러, 손님들은 그녀를 ‘코코’라고 불렀다. 영국 사업가의 도움으로, 파리에 샤넬 모드를 오픈하면서 디자이너로 등장했다. 1910~20년대 패션 트렌드를 장악했다. 1921년에는 샤넬 No.5 향수를 공개해, 당대의 향수 코드를 뒤흔들었다.


샤넬은 절제되면서도 여성의 움직임은 제한하지 않는, 일상생활에 적합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남성들과 친분을 쌓으며, 사업가적 기질과 예술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파격적이었고 진취적이었다. 나치 부역 혐의로 프랑스에 묻히지 못하고, 결국 망명지인 스위스에 묻혔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그녀와 함께 향수 라인을 운영했던 베르트 하이머의 2세 집안이 현재 샤넬의 소유주이며, 샤넬은 비상장 회사다. 내 딸이 샤넬을 내게 발음해 보라고 했다. 내가 “샤넬” 하니까 틀렸다고 하면서, 이렇게 우아하게 발음해 주었다. “쉬~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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