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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Jul 02. 2024

내만사 - 김정희

귀양인 03

김정희 (1786 ~ 1856)

3번이나 유배를 떠났던 추사는, 전국을 유랑하다 이 세상을 떠났다. 추사체와 세한도를 남겼다. 예술의 전당 추사의 작품 전시회는 아름다웠다. 그의 글과 그림은, 한 시대 지성인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 금석학자다. 그는 부유하고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실학자 박제가에게서 학문을 배우며 북학에 눈을 뜬 실학자다.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학문을 배웠다. 정약용의 아들과 깊은 친분을 나눈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되었지만, 당쟁으로 인해 정치권력이 바뀌거나 음모에 연루가 되면 기약 없이 유배를 가야 했다. 그는 3번 유배를 떠났으며, 총 12년의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1791년 실학자 박제가 선생이 입춘대길이라는 대문 글자를 보고, 그 글씨를 누가 썼는지 궁금해 집 대문을 두드렸다. 추사의 아버지가 자신의 5살 아들이 쓴 글자라고 알려주자, 박제가는 추사의 떡잎을 알아보고 직접 추사를 가르쳤다. 추사는 청나라 사신 일행으로 가면서, 당대 최고의 청나라 학자들과 학문과 예술을 논하며 식견을 넓혔다.


비석, 도자기 등에 새겨진 글자들을 연구하면서 우리나라에 잘못 전해져 오던 비석의 주인을 바로잡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 순수비의 진짜 주인임을 1,250년 만에 밝혔다. 한국 금석학의 신기원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호가 붙은 서체를 가지고 있는데, 추사체다. 조선의 필법이 중국의 좋은 점을 모방할 뿐이라고 개탄하며, 자신의 필체를 완성했다. 금석학자답게 한국과 중국의 옛날 비문에 나오는 글씨체를 모티브로 삼아, 투박하게 보이는 추사체를 제주도 귀양시절에 완성했다.


제주도 유배시절에 끊임없는 글씨 연습을 통해, 독창적인 글씨체로 만들어낸 것이 추사체다. 우리나라 서예가들은 “마치 신이 쓴듯한 기가 느껴진다. 바다의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머나먼 제주도 귀양살이의 외로움을, 가족과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달랬다. 다행히 역관 출신 제자(이상적)의 도움으로, 그가 청나라에서 직접 구해온 책들을 제주도에 보내주어 학문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는 이상적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세한도’라는 그림을 보내주었다.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국보다. 세한도에서 자신이 있는 제주도 집을 그림의 중앙에 두고, 소나무와 잣나무 4그루를 그렸다. 그리고, 추워진 뒤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든다는 글을 남겼다. 이상적의 마음이 귀양 와있던 처량한 자신에게, 소나무와 잣나무와 같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자신이 제주도에 유배되어 아무도 찾지 않는데, 이상적만이 찾아준데 그 고마움을 전한 것이다. 세한도는 문인화이므로 그림의 미술적인 기교보다는, 그림을 그린 동기가 중요시된다. 제자에 대한 감사함이 그림에 잘 표현되었다는 스토리가 이 그림의 진가를 높여주고 있다.


제주도 유배지에서 완성한 추사체와 세한도. 그 이후에도 한차례 더 유배를 가고 풀려났지만, 더 이상 관직에 나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글과 그림을 그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수년 전에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추사의 특별전을 관람했던 적이 있다. 당시 코로나가 만연했던 시기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마스크를 쓰고 관람했다. 관람객이 많지 않았고, 화선지에 묵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들과 큐레이터의 안내문을 읽으면서 추사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작품 하나하나에 조명기구가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의 정신세계와, 유배시절에 그가 겪었을 적막감을 표현하는 듯했다. 관람 내내 작품에 배어 있던 그의 선비정신이 내 몸을 휘어 감았다.


그는 평생 10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붓 1,000자루를 못쓰게 만들었다고 한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엄청난 노력 파였다. 제주도 유배 직전에 그의 글씨는 당당하고 윤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배 기간 중 완성된 추사체는, 군더더기와 기름을 빼 버린 원초적인 글씨체가 되었다. 시련은 그에게 가식을 멀리하게 했고, 정수(Essence)를 지향하게 만든 것 같다. 나는 힘 있고 묵직한 그의 추사체를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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