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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NL Jul 21. 2024

네덜란드에서 결혼식 하기

20240504 우당탕탕탕

얼레벌레 그날이 왔다. 본식 시작은 3시 반이고 1시 반까지 박물관에 가서 사진사와 만나 사진을 찍기로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여유로운 아침이었다. 남편 친구가 우리 가족을 태우러 와줬고 우리는 남편 차를 타고 이동했다. 신랑 신부 드레스룸은 따로따로 있었다. 도우미 이모님이 없어 엄마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드레스로 갈아입고 베일을 쓰고 구두를 신었다. 여기서 일차 문제가 발생했다! 아빠의 구두굽이 삭아서 터져버린 것이다. 바닥에 검은 굽(?)을 흘리고 다니시던 아빠는 테이프로 고정하면 된다고 했지만 엄마와 나의 화난 얼굴을 보고 신발을 사러 가셨다. 신랑 친구가 엄마와 아빠를 데리고 신발 쇼핑에 다녀와줬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신랑 친구가 차를 주차하기도 전에 엄마와 아빠는 숍으로 들어가서 대충 맞는 구두를 사셨다고 한다. 아빠의 새 신발은 엄청나게 반짝거렸다.


엄마와 아빠가 새로운 신발을 사러 간 동안 우리는 식전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예복을 미리 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신랑은 내 드레스의 재질도 디자인도 아무것도 몰랐다. 돌아보자면 아마도 이 순간이 가장 기대되고 떨렸던 것 같다. 신랑은 나보다 먼저 준비를 끝내고 독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마지막 점검을 했다. 나를 도와준 친구가 신랑과 사진사에게 내가 준비되었음을 전달했다. 본식이 열릴 연회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박물관을 방문한 어린이와 마주쳤다. 나를 본 아이는 엄마에게 ‘이 사람이 공주님이야?’ 하고 물었더랬다.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2층으로 올라가 연회장 문을 열고 보니 버진로드 끝에 뒤돌아선 신랑이 있었다. 신랑은 밝은 푸른색 예복을 입고 갈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홀로 버진로드를 걸어 신랑의 어깨를 쳤다. 신랑은 돌아서서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아주 완벽한 리액션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사진사가 우리 둘의 사진을 찍는 동안 우리는 마음이 어떤지, 기분이 어떤지, 떨리지는 않는지, 얘기를 했다. 본식이 시작되기 전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본격적으로 우리 둘의 사진을 찍고 가족들과의 사진도 찍었다.


3시부터 하객들이 도착했다. 우리 엄마아빠는 연회장 문 앞에서 하객들을 맞이했고 시부모님은 하객의 일부로 참여하셨다.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손님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방명록, 일회용 사진기,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제공했다. 이윽고 3시 30분. 정해진 예식시간이 되었다. 우리 결혼식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사회자가 한국어와 네덜란드어로 말했다. 사회 진행 경험이 없는 친구였지만 삼개국어가 가능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떨려하지 않는 극 E성향의 친구여서 사회부탁을 했다. 사회자의 안내에 맞추어 하객들이 착석했고 나와 신랑은 연회장 밖에서 대기했다.


사회자의 환영사 후에 양가 어머니들의 입장이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라이터 잠금을 푸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성공적으로 화촉점화를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양가 어머니들은 긴장이 되셨는데 자리에 앉지 않고 다시 버진로드를 걸어 나오셨다. 문밖에서 식장 뒤를 보고 있던 나와 신랑은 양가 어머니들이 걸어 나오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었다. 어머니들은 어찌어찌 당신들의 자리를 찾아 1열로 돌아가셨다. 다음 순서는 신랑 입장. 신랑은 입장 이후 하객들에게 인사하면서 마음이 벅차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신부 입장. 아빠와 함께 버진로드 끝에서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신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저 신나서 웃었고 신랑은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바로 혼인서약을 했다. 신랑이 먼저 준비한 서약서를 읽고 내가 읽었다. 그리고 반지를 교환했다. 우리 아빠가 축사를 했다. 챗 GTP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작성한 축사를 읽으셨다. 한국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축사를 듣는 동안 주례를 보며 서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신랑신부가 같이 앉을 수 있는 2인용 소파, 러브시트(love seat)를 준비한다. 우리도 축사하는 동안 러브시트에 앉아 있었다. 축사 후에는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기도가 있었다. 목사님께서는 한국어로 진행하겠다고 하셔서 영문 번역을 준비했는데 당일 정신이 없어서 하객들에게 나눠주지 못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은 멀뚱멀뚱했을 것이다. 기도 후 바로 축도가 있었고 신랑신부 행진을 했다. 모든 하객이 일어나서 축하해 주는데 행복했다.


본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사진을 찍었다. 먼저 전체와 같이 찍고, 부모님, 가족, 친구들 순으로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 토스트와 케이크 컷팅을 위해 연회장 반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케이크는 아는 한국분이 담당해 주셨는데 맛도 맛이지만 빈티지 케이크 장식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셔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케이크는 컷팅 및 사진용 케이크하나와 손님용 시트 케이크 3개를 준비했다. 컷팅용 케이크는 잘 들고 가서 며칠 동안 두고두고 먹었다. 토스트는 내 동생과 신랑의 동생들이 준비했다. 샴페인과 무알콜 샴페인이 준비되었다. 토스트 이후에는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저녁식사까지 손님들과 얘기하고 사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식사는 원래 6시 예정이었지만 조금 앞당겨 5시 30분부터 진행했다. 연회장 바로 옆 살롱에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었다. 테이블 세팅과 꽃은 니콜이라는 전문가에게 맡겼는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양한 꽃을 여러 개의 작은 꽃병에 어레인지해 나중에 손님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식사 선호는 손님들에게 이미 물어본 대로 준비되었고 자리배치대로 하나씩 나왔다. 애피타이저-본식-디저트의 3코스 식사를 끝내니 벌써 8시가 다가왔다. 5월 4일은 Rememberance of the Dead(Dodenherdenking)로 전쟁 희생자들을 위해 저녁 8시에 2분간 묵념을 한다. 몰튼 할머니는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사람으로 이 행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우리가 혹시나 2분 묵념을 잊었을까 봐 전전긍긍하셨다고 했다. 8시가 되기 3분 전, 신랑이 마이크를 들고 Rememberance of the Dead의 의미와 할머니를 소개했고 2분 묵념을 통해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과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자고 했다. 완벽히 조용했던 2분 묵념 이후 하객들도 하나 둘 인사를 하고 떠났다.


결혼식이 모두 끝나고 후련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예약한 호텔로 갔다. 로테르담 센터에 있는 하얏트 호텔이었는데 로맨틱 세팅을 주문해서 샴페인과 케이크와 장미꽃으로 장식된 객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그날의 기억이 새롭다. 신랑은 울보였고 나는 신났다. 이미 동거한 지 1년 반이 넘어 결혼식 전후의 삶에 별 차이는 없지만 결혼식이라는 아주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이 추가되었다. 전문가의 도움이 별로 없었던 어설프고 완벽하지 않은 결혼식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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