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영의 법칙: 애가 안 다치면 어른이 다친다 - 담임 생존 일기
(08화 야영의 추억(2) 을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어요!)
야영의 둘째 날은 '우리만 여기 남아 있어도 될까'하는 미안함과 아직 끝나지 않은 불안감이 뒤섞인 채 시작되었다.
이날은 야영의 하이라이트, 대망의 생존수영 강습이 있던 날. 먼저 보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잠시, 기다렸던 순간이 오자 아이들은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대프리카. 이미 땀이 폭포수처럼 흐르던 우리는 넓은 야외 풀, 찰랑이는 시원한 물을 보자 풍덩 뛰어들고 싶은 생각에 안달이 났다. 구명조끼를 걸친 아이들의 눈빛이 기대로 반짝였고, 그럴수록 선생님들의 긴장감도 고조되었다. 이 순간을 넘기면 이제 실내 활동 몇 개만 남았으니, 마음을 좀 놓을 수 있으리. 비록 잠을 못 잔 두 눈은 핏발이 서고 얼굴은 푸석푸석했지만, 끝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꺄아악!"
수영장 테두리를 따라 서 있던 아이들 무리 저쪽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지난 야영의 공포가 다시 등골을 따라 주르륵 흐르며 모골이 송연했다. 마음은 급한데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질세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뒤뚱거리며 도착한 곳에서 안도인지 허무함인지 모를 한숨이 '하ㅡ' 새어 나왔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모양이다.
"선생님, 벌레가 물에 빠졌어요!"
"아이고, 얘들아, 그럼 살짝 건져내면 되지. 놀랐잖아."
그 순간,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던 벌레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더니 내 발등 위로 착륙했다. 다시 한번 비명이 터졌다. 나도 벌레라면 진저리를 치지만 이런 데서 아이들처럼 무서운 티를 낼 순 없다. 다 큰 어른 흉내를 내야 하는 순간이다.
"아유, 귀 아파. 벌레도 니들 비명 소리에 놀랐나 보다."
하나도 안 무서운 척, 태연하게 발을 탕탕 굴렀다. 봤지? 선생님이 보여준 '으른'의 위엄에 아이들은 '와!' 하는 함성과 박수로 환호했다. 도도하게 흥, 하고 콧방귀를 한 번 날리며 뒤돌아섰다.
'어라? 발가락이 왜 이리 아프지?'
사르르 시작된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참기 어려워졌다. 운동화 안에서는 화끈거리는 열감까지 더해졌다.
'조금만 참자. 아이들이 물에서 나올 때까지만 버티자.'
다짐을 했건만, 이 통증이란 녀석은 양심이 없었다. 이마 위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이제 더 이상은 무리였다.
"선생님,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얼른 의무실에 가보세요! 여긴 우리가 보고 있을게요!"
옆반 선생님의 배려로 나는 한 발을 절뚝거리며 길을 나섰다. 아픈 발을 이끌고 세 걸음도 못 가 주저앉았다. 아이고, 저기 저 빨간 벽돌 건물에서 여기까진 금세 왔는데, 돌아가는 길은 천리길처럼 멀게만 보인다. 내리쬐는 햇살에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데, 일찍 허물을 벗고 나온 매미가 눈치 없이 울어대는 통에 머리까지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날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뙤약볕 아래 나 홀로 남겨졌다. 아, 외롭고, 서럽고, 아프다. 삼보일배하듯 기다시피 도착해 건물 로비에 들어섰을 땐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선생님! 아무래도 발가락이 골절된 거 같아요.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오셨어요? 병원에 가보셔야 되겠는데요!"
골절되어 퉁퉁 부운 발은 내 몸에 붙어 있는데도 꼭 남의 발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이 첩첩산중에서 어떻게 병원까지 가느냐는 거다. 그때, 한줄기 빛이 보였다.
'교감 선생님이 차를 가지고 오셨잖아!'
교감선생님이 운전대를 잡고, 나는 뒷자리 상석에 앉아 있다니. 뭔가 뒤바뀐 듯한 이 상황에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나가는 길은 아픈 발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괴로웠다. (교감선생님이 눈치를 주신건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쁜 교감선생님을 귀찮게 한 제가 죄송해서 괜히 그런 마음이 든 것뿐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교감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아, 이제는 교장선생님이시죠?)
남은 오후 내내 나는 "선생님 발 왜그래요" 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야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 어디 계셨어요! 저희 수영하는 거 보지도 않고!"라며 원망 섞인 말을 쏟아내다가도, 내 발을 보곤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사라졌다. '지금 우리 선생님 몸도 불편, 심기도 불편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일까. 다행히 아이들은 남은 활동을 '알아서' 잘 해주었다.
그날 발가락은 왜 부러졌던 걸까. 아이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가며 발에 힘을 너무 많이 주었던 걸까, 아니면 벌레를 쫓느라 바닥에 발을 쾅쾅 구른 게 화근이었을까? 진실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야영은 '애가 안 다치면 어른이 다칠 수도 있다'는 교훈을 남기며, 벌레 한 마리 때문에 '생존수영'보다 더 짜릿한 '생존담임 체험'과 함께 끝이 났다. 남들은 비만 오면 관절이 쑤신다지만 나는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이면 다 아문 발가락이 다시 시려온다. 한동안 벌레만 보면, 나도 모르게 발가락을 움츠렸던 것도 같은 이유겠지.
중학교 선생님을 하는 동안에는 아마 이 '야영'활동을 피해가기 힘들 테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다쳐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선생님인가. 아이들이 무사하면 됐다.
벌레야, 너도 조심해라. 다음에 넌 수영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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