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개수업(1)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누가 알았겠어

by 솔아

"제가 하겠습니다!"


첫 교직생활, 나는 겁 없는 병아리 교사였다. 그리고, 모든 시작에는 누군가의 피, 땀, 눈물이 스며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 교사로 근무하기 시작할 무렵, 교단에는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전자 칠판'이 설치되고, 각종 교과별 전용 교실이 하나둘 생겨나던 때. 하루가 멀다 하고 공사가 진행되는 학교들도 많았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던 '교과교실제'(학생들이 교과에 따라 교실을 이동해서 수업을 듣는 형태)라는 수업 방식이 처음 도입되던 무렵이었다.

나의 첫 근무지는 솔직히 환경이 그리 좋다고 말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환경을 개선하고자 함이었을까. 학교는 '교과교실제 시범학교'라는 타이틀을 따냈고, 나는 그 시작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영어' 교과교실제 시범학교라니. 말 그대로 '시범학교'이므로, 선례가 없다. 우리가 다른 학교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그 '선례'가 되어야 했다. 맨땅의 헤딩이 시작된 것이다.

영어 선생님들의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학교 규모가 작아서 영어선생님이라고 해봐야 달랑 3명뿐이었고, 그중 한 명은 아직 교직 경험이라곤 전무한 샛병아리 선생님, 바로 나였다. 일이 순조롭게 돌아갈 리 만무했다. 나름 의견도 보태보고, 도움이 되고 싶어 애를 썼지만, 대부분은 눈치만 보며 영어과 부장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오히려 조금 성가셨을지도.


'교과교실제' 안에서 학생들은 성적을 기반으로 레벨에 따른 수준별 수업을 들었고, 그 수업에 따라 교실을 이동했다. 우리는 이러한 수업을 위한 '전용 교실'을 꾸미기 위해 시도를 넘나들어 학교 교실을 벤치마킹하고, 업체와 미팅을 여러 차례 하며 좋은 제품을 고르기 위해 연일 초과근무를 해야 했다. 교실 하나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든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마치 내 집 인테리어를 하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교실 구조를 짜고, 벽지 색깔부터 책걸상 하나까지 선생님들이 직접 골랐다. 이 일만 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학교 업무에 수업도 해야 하고 아이들 생활지도까지 있으니 하루가 정말 숨 가빴다.

‘이게 다 언제 끝나려나’ 싶은 한숨이 나다가도, 하나둘, 수업을 위한 공간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쉬는 시간마다 그 주변을 어슬렁대기도 했다. 완성된 교실에서 폼나게 전자칠판을 톡톡 두드리며 수업하는 내 모습은 또 얼마나 멋져 보일지,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우리의 얼굴엔 피로와 함께 묘한 뿌듯함이 함께 배어 있었다. 이걸 내가 해냈다니! (나 혼자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한건 새발의 피정도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이제 수업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한 해가 다 갈 무렵, 영어과 부장님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져만 갔다.


"자, 선생님들. 우리가 시범학교이기도 하고, 예산을 많이 들여 교실을 새롭게 정비했잖아요. 그래서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학교를 공개해야 해요."


회의를 소집한 부장선생님이 걱정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음, 공개? 그거야 뭐, 하루 날 잡아서 교실 보여드리면 되는 거 아닌가? 우리도 다른 학교 다녀왔잖아.'


하룻강아지인 나는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단순한 교실 공개가 아니라, '대외 공개 수업'을 해야 된다고 하네요. 이 공개수업을 맡아주실 분이 있으실까요?"


순간 정적. 회의실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실무를 맡고 계신 부장님은 각종 보고서 작성이며 공개 준비며 할 일이 태산일 테니 제외. 그러고 나면 남은 건 나를 포함한 영어선생님 둘 뿐인데? 경력으로 따지자면 나는 이 판에 끼일 자격이 안 되는 게 맞았다. 아직 임명장에 잉크도 덜 마른 내가 어딜 감히.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들썩들썩한다.


'이건 기회야. 그동안 내가 별 도움도 못 됐는데!'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4일 오후 10_53_23.png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나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병아리 교사였다.


"정말 괜찮겠어? 이거 그냥 공개수업 아니고, 대외 공개수업이야.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오시는 거라고."


부장님은 고맙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들이 왜 이걸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하는지 그 시절에는 솔직히 잘 몰랐다. 몰랐기에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게 중대한 임무로 간주되어 나에겐 다른 업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이게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선생님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면, 내 등을 떠밀며 "솔아쌤은 가서 수업 준비만 열심히 하면 돼."라며 보내기 일쑤였다.


To be Continued.....




솔아 작가의 책을 만나보세요!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3504767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51082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