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그 시작과 끝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여기서 더 파고들면, 너도 나도 힘들다. 선을 지키자.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이만하면 충분히 오래 봤다. 고만 봐도 된다. 특히 너, 그래, 너 말이야. 하도 수업하다 자서 이제 정수리만 봐도 넌 줄 알겠다.
너도 그렇다.
- 그래, 예쁘고 사랑스러울 때 서로 웃으며 떠나는 거야.
뭐? 내년에도? 그냥 복도에서 반갑게 인사하면 되지. 원래 떠나갈 때를 아는 그 뒷모습이 아름다운 거야. 알지?
마지막 수업을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고, 입꼬리는 또 어찌나 씰룩대던지. 낼 모레면 우린 방학이라고!
나에겐 새해의 시작이 3월이다. 12월 말쯤 방학하고, 2월쯤 쑥-자란 아이들을 다시 만나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게 1년의 마무리였다.
몇 해전 겨울, 석면공사 덕분에 방학이 미뤄져 2월 개학이 사라지고, 해가 바뀌고도 계속 출근이었다.
몸은 이미 방학인지 "아니 왜 자꾸 일을 하니? 이제 쉬자!"라고 아우성쳤다. 그러더니 혼자 파업에 돌입해 버려서 주말 내내 아프더니, 월요일 출근까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다.
수액 투혼을 펼쳐 낑낑대며 출근했더니 쌓인 메시지만 한가득, 메시지 벽 타기를 하고 있자니, 돌밥돌밥 아니고, 돌일돌일... 돌 일이다, 진짜. 화장실 갈 틈은 달라고! 이러다 보니 아쉬움이고 뭐고, 이제 그냥 쉬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이래서 때 맞춰 한 템포 쉬어줘야 이별이 좀 아쉽고, 안타깝고, 서로 잊지 못할 거라며 징징댈 수 있는 거구나.
정신없는 와중에도 시간은 열일 중. 어김없이 그날은 왔다. 방학식을 끝으로 우리는 이별한다. 이제 진정 자유다! 이 기쁨을 글로 쓰자 마음먹고 흰 바탕의 한글 파일을 열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 1번부터 29번까지, 얼굴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왜인지. 그동안 미운 정이 들었나 보다. 너무 오래 봐버려서 이제 이 꽃들이 사랑스러워져 버렸나 보다. 그렇게 또 어여쁜 꽃들과 이별을 했다.
올해는 중학교 시절을 마무리하는 3학년 아이들의 담임이 되었다. 1학년 담임만 2년을 연이어했더니 이제 사춘기 끝자락에서 철도 좀 들고, 말도 좀 통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업무분장희망서에 3만 커다랗게 세 칸을 가득 채워 넣었더니, 소원대로 3학년으로 배정받았다. 2년 전, 꼬꼬마 새내기 중학생 시절에 만났던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니. 새로운 시작 앞에서 늘 느끼던 불안과 걱정이 조금은 덜했다. 오히려 다시 만날 아이들 생각에 설렘이 더 컸다.
개학 첫날 마주한 아이들. 이런 운명의 장난 같은 반배정을 보았나. 2년 전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우리 반에 없다. 그래도 반갑다. 다 내 손(?)으로 키운 아이들이니.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이다. 언제 이만큼들 커버린 건지. 분명 동글동글 밤톨 같던 아이들이었는데. 턱 밑에 희미하게 보이는 거뭇거뭇한 점들은 수염 자국인가. 호명에 대답하는 목소리도 부쩍 굵어졌다. 변성기를 지나 한층 낮아진 아이들의 목소리가 낯설다.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중학생이라고 생각 못할 만큼 변해버린 아이들. 아, 서운하다. 너희, 왜 허락도 없이 다 커버린 건데.
3학년이면 좀 다를 줄 알았다. 외모만큼 성숙해져 있을거라 믿었는데. 얘네, 아직 중학생이구나. 내가 3학년 담임을 너무 오래 쉬었나 보다. 쉬는 시간만 되면 복도가 떠나갈 것 같이 시끄러운 것도, 책상 사이를 넘나들며 뛰어다니는 것도, 급식 메뉴에 밑줄을 긋고 줄줄 외우는 것도, 어째 하는 행동이 1학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다가도,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눈빛만 보내도 눈치껏 행동할 줄 아는 아이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던 지난 날들은 이제 안녕. 아침 자습 시간에 책상 위에 뭐라도 꺼내 들고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반항하던 눈빛이 한결 수그러들었고, 목소리에 사춘기 특유의 건들거림이 점점 사라져 간다.
이제 너희들의 전두엽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긴 하구나. 졸업하기 전에 자리 잡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3월, 아직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요상한 날씨. 눈을 보고 마냥 좋다고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는 덩치만 큰, 아직은 어린 3학년 아이들. 흩날리는 눈발에 정신이 팔려 수업은 뒷전이다. 깔깔 거리고 웃느라 정신없는, 나보다도 한참 더 큰 아이들의 모습이 또 귀여워 보이다니. 이거 병이다, 병.
아직 날이 찬데도, 교실엔 한가득 봄꽃이 피었다. 내 눈앞에 피어나고 있는 어여쁜 봄꽃들. 올해는 또 어떤 잔소리로 아이들을 들들 볶아볼까. 또 어떤 품으로 아이들을 안아줄까.
아직은 좀 서툴고, 여전히 아이 같지만 결국 한 뼘 더 커서 중학교라는 둥지를 떠나겠지.
학생들은 원석이고, 나는 보석세공사이다. 잘 갈고 다듬어 반짝반짝 빛이 나게 정성을 들여 세공한다. 그 눈부신 아이를 어미새가 아기새를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낸다. 이별이 후련한 순간이 있었나? 벌써 십수 년째 매해 이별을 겪으면서도 익숙하지 않다. 슬픈 발라드가 귓가에 스치는 것 같달까? 총 맞은 것처럼 구멍 난 가슴에 추억이 넘쳐흐른다. 그 구멍은 다음 보석들이 차곡차곡 메꾸어준다.
내일도, 내일 모레도 너희는 더 큰 세상으로 뻗어 나가지만 나는 여기서 너희를 바라보며 멀리서 응원할게. 너희의 꽃다운 인생 한 때에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었을지라도, 그 인연이 되었음을 감사히 여기며 또 새로 피어날 꽃들을 맞이할게.
이제 다시 끝을 준비하는 시절이 다가왔다. 홀가분한 듯, 그렇게 쿨하게 안녕! 해줘야지.
올해도 많이 웃고, 가끔 울고, 실컷 고민하면서 보냈다.
너희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언제나 그 길 위에서 응원하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