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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키우기 간접경험

열 여섯 소년들 틈에 던져진 어느 딸둘맘

by 솔아

내가 근무 중인 학교는 남학생들의 비율이 좀 더 높다. 근처에 여중이 있어서인지 여학생들은 그쪽으로 많이 몰린 듯하다. 초등학생 때처럼 남녀를 짝으로 앉힌다면 많은 남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남남 짝꿍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아닌가? 더 좋아하려나?), 다행히 짝꿍을 만들지 않는다는 나의 철칙 덕분에 눈물을 보이는 학생들은 없다. 다만, 아들들이 더 많은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는 딸둘맘은 하루 종일 장난꾸러기 남학생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지고, 연일 언성을 높이느라 목소리가 걸걸해지고 있다.


"선생님, 한 학기 지나더니 목이 다 쉬었어요!"


오늘도 복도에서 호통치는 나를 본 옆반 선생님의 말씀이다. 맞는 말이다. 이쯤되면 나도 공식적으로 아들맘이라 해도 될 것 같다.


남학생들로 말하자면 일단, 교실 안에서 ‘착석’이라는 개념을 기대하긴 어렵다. 겨우 자리에 앉혀놓고 출석을 확인하고 나면 그때부턴 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모님들은 남학생들이 훨씬 더 수다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분명 상담할 때 늘 "우리 애는 저한테 말을 안 해요."라는 불평을 늘어놓으시는 건 남학생들의 어머니들인데 말이다. 공감해 드리기 매우 힘이 듭니다, 어머니들. 저에겐 말이 너무 많아서 탈인걸요.

수업 중에도 남학생들은 눈만 마주치면 장난거리가 떠오르나 보다. 책상으로 바벨 운동하기, 교과 선생님 눈 피해서 종이공 던지기, 페트병 뚜껑 날리기, 거울로 햇빛 반사시키기. 이런 장난은 그나마 귀여운 축에 속한다. 교실에서 줄넘기하기, 공차기, 야구 연습, 잡기놀이, 레슬링, 실내화로 축구하기 등등. 각종 사고로 창문이 깨지고, 누구 하나는 꼭 피를 봐야 장난에 마침표가 찍힌다.

한 번은 옷이 찢어지고 무릎 아래가 온통 피범벅이 된 ㄱ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선생님들의 놀람과 걱정의 눈빛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가벼운 발걸음. 경악에 찬 나와 달리, “선생님, 넘어졌는데 옷 갈아입으러 집에 갔다 와도 돼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아이. 얼굴엔 미소가 떠 있다. 운동장을 뒹굴렀다는 태연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벌렁대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어머니께 전화를 돌리면서도 뭐라 설명을 드려야 할지 막막했다.


“아이고, 선생님, 제가 우리 ㄱ 때문에 돌아버리겠습니다!!”


마지막 울분에 하마터면 “저도요!” 하고 맞장구칠 뻔했다. 하도 다치는 일이 잦아서인지, 오히려 담임인 나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하는 학부모님.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겨우 손으로 틀어막고, 보이지 않는 학부모님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도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ㄱ을 보자, 왜 울컥 화가 치미는 걸까. 넌 지금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니?


이 정도 상처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책상 사이를 넘나들며 술래잡기를 하다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찧거나, 괜히 가만히 잘 있는 대들보를 치겠다고 풀쩍풀쩍 뛰다 넘어져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한 장난질뿐이다. 열여섯이 되도록 여섯 살 아이를 돌보듯 해야 한다니.

여학생 생활지도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잠시였지만 학급에 남아 있는 남학생들이 걱정되어 헐레벌떡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복도 저 끝에서 학생 하나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아, 이 기시감. 저렇게 부를 때는 십중팔구 좋은 일은 아니다. 학생이 가리키는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떠봐도 뿌연 시야는 맑아지지 않았다. 묘하게 핑크빛으로 물든 교실. 매캐한 가루가 숨을 타고 목으로 넘어왔다. 바닥에도 온통 핑크빛 가루가 흩뿌려져 있고, 아이들은 저마다 콜록대며 복도로 대피 중이다. 상황 파악을 하기 전에, 커다란 밀대를 들고 뛰어오던 남학생 하나가 나를 보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 저 녀석이 범인이군.

담임인 내가 오기 전에 사건 현장을 은폐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상황인즉, 교실 소화기의 약간 비스듬히 꽂혀 있던 핀이 그날따라 신경이 쓰였던 ㅅ은 핀을 바로 꽂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핀을 뽑고, 핀이 들어갈 구멍을 맞추려고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을 뿐인데... 하. 긴 말은 생략하겠다.


교직에 들어선 순간부터 남학생들의 행동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고, 이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매일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결국 나는 ‘한 발 물러서기’를 통해 평화를 얻었지만, 그들의 생각을 읽어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어느 선생님은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고 조언했지만, 한 번쯤 그들의 뇌를 이해해보고 싶다. 지금도 운동장을 가르며 한겨울에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축구공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과연 나에게도 그들을 이해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해하려 하면 막막하고, 포기하려 하면 마음을 슬쩍 흔들어놓는다. 어쩌면 이 아이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뭐, 솔직히 말하면 그 아이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긴 하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그들 세계의 문을 노크해본다. 문이 열리면 감사하고, 안 열리면, 뭐, 내일 다시 두드리면 되니까. 언젠가 문이 열릴 그날은 분명 황당하면서도 웃길 테고, 아마 아주 조금은 나를 감동시킬 무언가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입에 "얘들아, 도대체 왜 그러니"를 달고 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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