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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vs. 고등학교

정보제공 글은 아니에요

by 솔아

3월을 코앞에 둔 어느 날, 아직 첫 수업에 무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지금 교재로 3학년 수업은 몇 해 전에 해보아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대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졸지 않고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문법 시간에는 뭘 해야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넣어서 고등학교에 가서 써먹을 수 있을까, 그건 좀 고민이었다.

중학교 영어는 솔직히 쉽다. 본문도 몇 바닥 안 된다. 그 몇 개 되지 않는 글에서 시험문제까지 지난 5년간 낸 문제와 겹치지 않도록 내라니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시험 기간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문제를 내는 나의 심정을 알까. 동학년 선생님이라도 있으면 사정은 좀 낫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너랑 나랑 반반 나누어서 짐을 짊어질 수 있으니까. 올해는 다행히 마음이 잘 맞는 동료 선생님을 만나서 새 학기 전부터 신이 났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수업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그깟 단원 하나, 한두 시간만 가르치면 끝낼 수 있는 분량이다. 나 혼자 블라블라 떠들면 되니까. 내용이 많지 않으니 이걸 가지고 어떤 활동을 만들어 내야 할지 고민고민 해야 한다. 한 시간이라도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정말 봄날 병아리같이 졸고 있다.


새 학기 수업 아이디어를 좀 얻고 싶어서 영어 선생님들 카페에 들락날락하다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근을 가신 분의 글을 우연히 만났다. 수업을 어떻게 준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다정한 선배 선생님들의 댓글이 우수수 달려있다. 나도 같이 아이디어를 좀 얻어 가야지, 하고 댓글을 읽는데, ebs 보는 것처럼 하면 된다는 조언이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대학 입시를 앞둔 다 큰 학생들한테 중학교 때처럼 게임하고, 짝활동, 그룹활동 하는 건 좀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는 아무래도 본문 페이지 수도 많아지고, 글자도 작아지고, 교과서 외 교재까지 다루어야 하고, 영어만 해도 선택과목까지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모의고사 지문까지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니 중학교처럼 활동까지 준비하긴 시간도 품도 많이 들겠지? ebs 수업, 그런 거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나한테 그런 것만 시켜주면 좋겠다.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4년을 꽉 채워서 이동을 앞두고 있었기에 댓글들을 읽으며 내년엔 고등학교로의 전근을 잠시 꿈꿔보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는 생각을 접은 지 오래였다. 아무래도 보충 수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늦어지는 퇴근 시간, 짧은 방학 등을 고려하면 내 품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중학교에 남는 것이 최선이라 여겨졌다. 일을 그만두기엔 가정 경제가 흔들릴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 고등학교로 가봐?' 하는 생각에 오랜만에 수능 시험지를 인쇄해서 펼쳐 들고 앉았다. 답이 쉽게 찾아지는 문제 앞에서는 '내 실력 아직은 죽지 않았네.' 라며 자신감이 차오르다가도, 어려운 문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갈 때 진작 갈걸, 하는 후회가 조금 들기도 했다. 그래도 한때는 매년 수능 문제를 풀고, 영자 신문을 읽으며 언젠간 가게 될 고등학교 수업을 위한 준비를 하던 때도 있었는데.

수능 영어 단어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상상도 해보았다. 물론 알고 있다. 영어 단어를 많이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 사이에는 비례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왜인지 등줄기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교단에 서서 독해 문제를 해석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내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직은 중학교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기엔 이른가 보다. 아이들을 깨우려면 어떤 활동을 준비해야 할까 매일 고민해야겠지만,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오늘은 뭐 해요?’를 물으며 기대 가득한 표정을 보여주는 중학생들이 어쩌면 더 나랑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들 앞에서 모의고사 지문을 두고 씨름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교실이 더 끌리기도 하다. 시험 문제 낼 땐 또 '낼만한 문제는 다 출제됐다'며 머리 쥐어뜯겠지만. 음, 그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덧,

고등학교에서도 프로젝트 수업, 게임 등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도 한다. 바뀐 교육과정, 예측할 수 없는 입시의 최전선에서 고생 중인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의 손길을 조금 덜 필요로 할 때, 나도 언젠가는 중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그 속으로 슬쩍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부터 다시 준비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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