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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2)

내가 손을 왜 들었더라 - 열정과 요령 사이

by 솔아

(이전 글 11화 공개수업(1)을 보고 오시면 더 좋아요^^!)


선생님들이 왜 이걸 꺼려하고, 부담스러워하는지 그 시절에는 솔직히 잘 몰랐다. 몰랐기에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무식해서 용감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나는 덜컥 손을 들고 난 뒤 복도를 지날 때마다 선생님들의 위로 섞인 눈빛을 받아야 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만큼, 열의는 누구보다 앞섰다. 대신, 요령이 없었다. 배운 이론은 이것저것 다 넣고 싶었다. 욕심만 가득한 수업 지도안을 써내려 갔다. 최신 영어교수법 종합선물세트 같은 지도안의 탄생에 내심 뿌듯했다. 이대로 수업이 가능하다면 정말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업이 될 것이다. 연습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너무 준비한 티가 나면 ‘프로’ 같지 않아 보일까 하는 순진한 생각 때문이었다.


"딩동댕!"


종이 치고, 아이들이 몰려왔다. 교실 뒤편을 가득 메운 손님들을 보는 아이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온다는 말을 없었잖아요?'


아이들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분명 아까까지 괜찮았는데, 목소리도 평소와 같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최신식 전자 칠판에 닿은 내 손이 나의 상태를 대변했다. 긴장 따위 안 한 줄 알았는데. 터치가 잘못되어 엉뚱한 화면이 열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내 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에 쥔 큐카드는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다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버벅거리기를 반복했다.


"자, 이 부분 누가 발표 한 번 해볼까?"


평소에 목소리 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학생들이 오늘은 조개처럼 다문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애써 웃음 짓는 입꼬리에 경련이 일었다. 두어 번 더 질문을 던지다가 결국 번호를 불렀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 반 반장 녀석은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했다. 어찌어찌 학생들 활동까지 이어졌다. 조별 활동을 한창 하는 동안 몰래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물도 한 모금 마시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이제 괜찮아. 이 활동하고, 조별로 발표만 하면 끝나는 거야.'


너무 어려운 과제를 던진 걸까. 활동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업 초반에는 느릿느릿 흐르던 시간이 지금은 야속하게도 전력질주 중이다. 10분밖에 남지 않은 수업 시간, 아이들은 여전히 학습지를 붙들고 낑낑대고 있고, 요령이 없던 나는 수업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초조함에 연신 땀을 닦으며 아이들에게 서두르라고 이야기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결국, 강제로 활동을 종료시키고 어설픈 조별발표를 한 두 팀 정도 하는 도중 종소리와 함께 수업은 종료되었다. 준비해 둔 수업 정리 멘트도, 아직 한참 남은 내 ppt 슬라이드도 여기서 끝났다. 종소리에 맞춰 참관 손님들도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다. 내 영혼도 함께 빠져나갔다. 아이들도 하나둘 멍한 눈으로 서 있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뒤늦게 다음 수업을 위해 교실을 떠났다.

'아.. 이래서..'


3초만이라도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과거의 나를 대면할 수만 있다면.


"솔아야, 넌 아직 수업에 '수'자도 모르는 애송이란다. 제발 애들 데리고 한 번만 연습해 보렴."


과한 부분은 덜어내고, 아이들 활동 시간 계산도 좀 해보고. 그랬어야 했다. 그땐, 내가 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척척 진행될 거라 믿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했다. 손님들이 오면 학생들도 긴장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만 했다. 지도안을 점검받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여러 조언의 말씀도 잊지 않고 해 주셨지만, 뒷일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은 그 시절이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자만이었다.


방문하신 선생님들은 따뜻한 눈길로 나를 응원하셨으리라. 다만 엉망이 된 수업을 수습하느라 그 눈빛이 내게 닿지 못했을 뿐. 처음을 너무 큰 무대에서 맞이하고 말았다. 지도안에 쓰인 대로 흘러간 부분은 한순간도 없었다.


첫 공개수업은 그렇게 폭풍처럼 지나갔다. 이 기억이 워낙 강렬했던 덕분에 이후의 수업들은 웬만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시간이 선물해준 경험과 요령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그날의 나는 참 서툴렀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서툼마저도 나를 이 자리로 데리고 온 소중한 과정이었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 얼굴이 화끈거렸던 순간도, 지금은 미소가 번지는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도 분명 실수할 것이다. 때로는 엉뚱한 화면을 띄울 때도 있고, 아이들이 조용히 입을 꾹 다물 수도 있다. 그래도 이젠 괜찮다. 다시 숨을 고르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함께 웃으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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