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지원하다 성격까지 돌아봤다
"내 성격은 왜 이 모양일까..."
석사 입학과 동시에 '박사 진학'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1년짜리 영국 석사과정생의 숙명이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컨택’이었다. 처음 보는 교수님께 나를 소개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일.
메일 한 통 보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내향적인 성격은 오래된 콤플렉스였다.
사람을 쉽게 사귀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고, 조심스러운 태도 때문에 놓친 기회들이 아쉬웠다.
처음엔 고쳐보려고 애썼다. 상담도 받아봤고, 심리학 책도 여러 권 읽었다. 결론은 늘 비슷했다.
'내향적인 성격을 인정하고 수용하세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했다.
'나는 원래 조용한 사람이다.'
그런데 막상 중요한 순간이 오면, 그 다짐은 까맣게 잊었다. 나답지 않은 연기를 하며 삐걱거렸다.
모임에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말을 붙여보다가, 결국 눈치만 보다 돌아왔고,
집에 돌아와서는 어김없이 내 성격을 원망했다. ‘나는 왜 이런 것도 자연스럽게 못할까’ 하고.
기숙사 같은 층에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전공은 무려 ‘international relations’ - 말 그대로 '관계'를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컨택’에 관해서는, 그 친구의 조언이 내 판단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웠다.
"이 사람들은 널 모르잖아? 감정적인 교류가 필요해."
친구는 바쁜 시간을 쪼개 내 메일을 점검해 줬다. 앙상한 문장에 살을 붙이고, 감정을 더했다. 간결한 내 초안은, 장황한 스토리가 더해진 에세이로 돌아왔다. 어딘가 낯설었지만, ‘커뮤니케이션 장인’의 조언이었다. 믿고 조심스레 전송 버튼을 눌렀다.
문제는, 내가 교감해야 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물리학과’ 교수님들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부담스럽다고 느꼈던 표현은, 아마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느꼈을 가능성이 컸다.
외부 교수님들께 컨택할 때는 그 당연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바빴고, 긴 이메일을 대체로 읽지 않았다. 답장이 없으니,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문제가 드러난 건, 내 담당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릴 때였다.
친구의 전략대로, 내 근황을 길게 풀어쓰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사소한 주제를 덧붙였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왜 연구가 아닌, 쓸데없는 문제에 자꾸 신경을 쓰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지'보다, '가벼운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가끔은 답답하다는 말을 들어도,
도움 요청할 타이밍을 놓쳐도,
내가 말을 아끼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이유가 있었다.
나는 경솔해 보이는 걸,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다.
그날 이후, 내향적인 성격을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내가 무의식 중에 선택해 온 삶의 방식'으로 보기 시작했다.
늘 이 성격 때문에 잃은 것만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그 덕분에 내 본모습이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 바로 이론물리학과에 도달해 있었다.
내 외향적인 척이 매번 어색하게 실패했기 때문에, 나처럼 조용하게 탐구를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내 옆에 머물렀고, 관계도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서서히 만들어졌다.
'내향적인 성격을 수용한다'는 건, 단순히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인지하는 것을 넘어,
그 성격이 불러온 결과들까지도 함께 껴안는 일이었다.
그 해, 박사 지원 시즌을 지나며 나는 비로소 오래된 나의 성격과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