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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남산 백범광장에서 쓰는 책 리뷰/김진용 지음

by 김인숙

가을 정취 물씬한 백범광장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남산 백범광장을 찾았다. 가방에는 생수 한 병, 읽을 책 한 권을 넣었다. 버스가 남산도서관을 지나가는데 소월 광장 근처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도서관 앞에서 내려 소월 시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서 보니 지난 10월 25일 새롭게 문을 연 남산 하늘숲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새로 난 길을 걸어 남산타워까지 가고 싶었으나 오늘은 목적지가 따로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백범광장 쪽으로 걸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소월 정원의 소월 시비와 하늘숲길 시작 지점


노란 은행잎을 일부러 골라 밟으며 백범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대부분 강아지풀이 우거진 도성 근처에 모여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단풍도 멋있지만 갈색의 강아지풀은 또 다른 짙은 가을 풍경을 자아냈다. 백범광장이 한눈에 보이고 단풍과 강아지풀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는 김진용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브런치에서 무당벌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책 타이틀 밑에는 -아빠와 아들을 잇는 관계 인문학-이라는 서브 타이틀이 달려있다. 솔직히 책 제목보다 서브 타이틀이 더 마음에 닿았다.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책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은 입에 찰싹 달라붙는 단어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엄마와 딸은 찰떡궁합이 맞지만, 아빠와 아들이 찰떡궁합이 되는 조합은 주변에서 찾기 쉽지 않다. 아마 다 큰 아들과 둘만의 여행을 떠나는 부자가 있다면 자녀 교육에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엄지 척을 해주겠다.


백범 김구 선생 동상과 남산타워, 그리고 광장


사실 책은 집에서 다 읽었다. 그럼에도 굳이 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진정한 아빠와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싶어서였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 아들을 두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들에게 책을 가지고 노는 게임을 개발하며 아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아들의 교육에 영혼을 갈아 넣었다. 그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아빠가 물었다.


“아빠의 좋은 점은 어떤 게 있을까?”

아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일언지하 답했다.

“없어.”

“엉? 하나도?”

“어.”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 아빠에게 아들은 왜 말을 거냐는 귀찮은 눈빛까지 건넸다.


독자가 보는 저자는 자녀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공들여온 상위 1% 아빠다. 우리의 현실은 모든 아빠가 자녀를 함께 키우지 않는다. 자녀를 키우는 건 대부분 엄마들의 몫이다. 아빠들이 다 큰 자녀와 데면데면한 것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그래서 많은 아빠들이 자녀가 크면 집안에서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그 책임은 오직 자신에게 있지만, 이 땅의 아빠들은 항의한다. 가족을 위해 돈 벌어온 죄밖에 없는데 왜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고.


책 광고 카피


책은 아빠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가령 아들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아빠는 자신을 반성하며 그동안 읽었던 책 혹은 영화를 꺼내 복기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길에서 발견한 아빠는 고양이를 갓길로 옮긴 후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계속 고양이가 신경 쓰여 사고 장소로 돌아가자고 아빠를 조른다. 안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아빠는 아이에게 소리친다.

“네 감정만 중요한 게 아냐!”

뱉지 말아야 할 말을 한 아빠는 아들의 원망 어린 시선을 10년이 넘도록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모비 딕>의 에이헤브 선장과 일등항해사 스타벅을 떠올린다. 에이헤브 선장은 모비 딕이라는 하얀 향유고래에게 왼쪽 다리가 잘렸다. 그는 모비 딕에게 복수를 꿈꾸며 3년 동안 항해를 이어간다. 향유고래는 이빨 달린 생명체 가운데 가장 거대하며 거칠다. 선장은 복수를 위해 피쿼드호 선원들을 이끌고 출항한다. 제일 먼저 놈을 발견하면 빛나는 스페인 금화를 주겠다는 말에 선원들은 열광한다.


유일하게 반대하는 사람은 일등항해사 스타벅이다. 스타벅은 선장에게 말한다. 자신은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의 복수를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선장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이름이 <모비딕> 소설의 일등항해사 스타벅에서 따왔다는 깨알 상식도 한 줄 전하고 있다.


마침내 3년 후 선장은 모비딕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틀간의 사투 끝에 배는 모비딕에게 파손되어 선원들 대부분이 죽고 선장 역시 모비딕에게 작살을 꽂은 줄이 자신의 목에 감겨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처음부터 선장의 뒤틀린 피해의식은 파멸의 항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모비딕>은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 문학이며 뛰어난 해양 소설로 평가받는다. 아쉽게도 허먼 멜빌이 죽기 전까지 <모비딕>은 겨우 3,200부 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제목이 '하얀 고래'라는 뜻의 <백경>이었다. 아마 <백경>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비딕>을 읽은 독자들은 에이헤브의 불굴의 의지를 높이 사기도 하고 스타벅을 지지하기도 한다.


책 카피


저자는 다시 길고양이를 만났던 날을 떠올린다. 아빠는 위험한 빙판길에 아들의 안전이 더 중요했고 아들은 고양이에 관한 연민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물론 아들의 말처럼 구조 신고를 하고 그들이 와서 고양이를 데려갈 때까지 기다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작가는 솔직히 귀찮고 번거로웠다고 자기감정을 말한다. 그러나 아빠는 회상한다. 당시 둘 다 자기 괴로움에 묶였지만, 아들이 더 어른이었다고. 그 순간 어른을 보여주지 못한 아빠는 오랜 시간을 번민했다. 아빠의 반성은 다음의 문장에서 빛난다.


못생긴 감정에게 안방과 침실까지 다 내주고 정작 현관 밖에서 추위에 떨었구나. 자기감정들을 분별해 알맞은 자리를 배정하는 이성, 그러니까 내면의 감옥을 나서는 열쇠는 타인의 괴로움에 비워보는 거였구나. 아빠가 정말 잘못했구나. (본문 26쪽)


저자는 대학에서 신방과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을 공부한 덕인지 군데군데 인간의 깊은 내면을 성찰하는 주옥같은 문장이 많았다. 저자는 방송, 신문, 잡지, 출판에서 기자, PD, 편집장을 거치며 교육 분야를 취재했다. 또 여러 시민단체 활동 중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산하 공동육아협동조합에 가장 애착을 쏟았다. 1등급 독서교육연구소를 설립해 교과연계독서 콘텐츠를 각종 기관과 사교육 업체에 보급하기도 했다. 교육의 지각변동을 다룬 『2020 입시대변동』(공저)도 펴냈다.


세월이 흐른 후 아빠는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 본다.

“아빠의 좋은 점은 어떤 게 있을까?”

까칠한 고등학생이었을 때 “없다”라고 내뱉은 말이 내심 마음에 걸렸던 아들 역시 이번에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아빠? 내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어울려 줬지. 생각할 거리도 주고, 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전 소설, 희곡, 영화 속에서 갈등의 장면들을 찾아내고 그 장면에서 당면한 갈등을 선명하게 비춰본다는 점이다. 저자는 상황에 맞게 인문학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있다. 참고로 언급된 책과 영화는 다음과 같다.


소설 『모비 딕』, 영화 「결혼 이야기」, 소설 『어린 왕자』, 희곡 『닫힌 방』,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희곡 『당통의 죽음』, 희곡 『리어 왕』, 영화 「캐스트 어웨이」, 영화 「그녀(Her)」, 희곡 『컬렉티드 스토리즈』, 소설 『폭풍의 언덕』,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 영화 「크림슨 타이드」, 영화 「캡틴 판타스틱」,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 「퍼펙트맨」, 영화 「소년의 시간」


교보문고 책 소개에 들어가 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보였다.


이 책은 20여 년 부자관계 에세이의 탈을 쓴 소프트 교양 인문 에세이다. 세대 간의 가치관과 권위 충돌이라는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갈등과 대립의 이슈를, 가장 내밀한 형태인 부자 관계의 미숙함을 통해 비춰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학, 영화 등의 고전 작품 속의 명장면을 인용해 개인적인 경험을 인문학적 성찰로 확장하는 방식은 공감의 명찰을 꺼내 단 채 다시 대화에 나선다.


이 책의 설명을 이 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에세이의 탈을 쓴 소프트 교양 에세이라는 대목이 콕 마음에 와서 박힌다. 그래서일까? 책을 다 읽고 나니 한층 교양이 풍부해진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든다.

토요일 오후, 백범광장에는 많은 가족들이 나들이를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들과 아빠의 조합은 보이지 않는다.


회현역에서 백범광장 올라가는 길


문득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를 떠올려 보았다.

이 두 콤플렉스가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은 ‘우리는 왜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갈등할까?’이다.

부모와 자식은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 동시에 가장 격렬하게 갈등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 혹은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절대 엄마처럼은 살지 않을 거야.”

“아버지처럼 꽉 막힌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


이런 다짐을 수없이 하면서도,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 나 자신이 부모님의 말투와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소름 돋을 때가 있다. 이 복잡한 감정의 뿌리에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융이 발견한 아주 오래된 두 가지 신화가 숨어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피할 수 없는 왕좌 경쟁-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아들이 아버지와 갈등하는 심리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가 운명적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던 비극에서 이름을 따온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 안에 어떻게 오이디푸스가 숨어있을까?


아들에게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만난 이성이자, 따뜻한 안식처다. 아들은 어머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데 이때 아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나누어 갖는 최초의 경쟁자이자 자신보다 훨씬 강한 권위자의 모습이다.


아들은 본능적으로 아버지를 향해 질투와 적대감을 느낀다. 그러나 저 강한 아버지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아들이 성인 남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바로 이 싸움을 멈추고 아버지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데 머무는 대신, ‘저렇게 돼야 한다’라고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역할을 따라 배우는 것이다.


결국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이 아버지의 왕좌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왕자’에서 ‘왕’으로 성장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셈이다.


어머니와 딸의 정체성 거울 - 엘렉트라 콤플렉스

그렇다면 어머니와 딸 사이의 복잡한 감정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칼 융은 이를 엘렉트라 콤플렉스로 설명했다. 아버지의 살해범인 어머니에게 복수했던 그리스 신화 속 엘렉트라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딸에게 아버지는 따뜻하고 이상적인 첫 번째 이성이다. 반면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독차지하고 있는 경쟁자로 다가온다.

딸은 왜 어머니를 가장 까다로운 상대로 여길까? 딸은 어머니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삶과 정체성을 배우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외모, 능력, 삶의 방식 등 모든 것을 무의식적으로 평가하고 경쟁하려 한다.


“엄마는 저렇게 살았지만, 나는 더 멋진 삶을 살 거야.”

“내가 엄마보다 더 예쁘거나, 더 유능하거나,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해.”


이는 단순히 질투가 아니다. 어머니의 삶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치열한 노력이다. 어머니의 삶을 뛰어넘어, 혹은 어머니의 좋은 점을 물려받아, 자신만의 여성성을 확립하려는 무의식적인 몸부림이다.


마찬가지로 딸이 성숙해지려면, 어머니와의 경쟁을 멈추고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 선배 여성으로 존중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이 두 가지 콤플렉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우리가 동성 부모와 갈등하고 경쟁하는 것은 부모님을 가장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사랑하고 닮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밀어내는 것은, 아버지의 영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립된 남성성을 구축하려는 과정이다.

또 딸이 어머니와 거리를 두는 것은,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여성성을 완성하려는 노력이다. 결국 우리는 부모님과의 치열한 심리적 싸움을 통해 비로소 ‘나’로 태어나게 된다.


만약 지금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렵거나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면, 이는 자신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갈등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에 우리는 부모님을 경쟁의 대상이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바라보며, 갈등 대신 이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비로소 부모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해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남산타워를 멀리 두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평온하다. 하긴 갈등하는 가족이 즐겁게 나들이를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문득 우리 집 부자의 치열했던 순간도 떠올랐다. 총보다 더한 아픔을 서로에게 쏘아대던 장면들, 옆에서 지켜보기에 극단적으로만 치닫던 감정의 파편들, 아들은 짐을 꾸려 집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괘씸해서 분노하던, 그리고 그 감정들이 가라앉기에 필요했던 긴 시간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밥도 같이 먹을 사이가 되어 더할 수 없이 기쁘다. 그렇다고 아빠가 유난히 성격이 나쁘거나 아들이 되바라지지도 않았다. 아빠는 아이들의 연필까지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던 자상한 아빠였고 아들은 사춘기도 있는지 없는지 유야무야 지나버린 착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한번 감정이 어그러지자 걷잡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선뜻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다시 책을 열어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곳을 읽어본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착각도 내 착각도 맥락은 다르지 않았다. 자녀 키울 때의 착각이기도 했다. 부모 눈높이를 떠넘기는 게 믿음이며 부모 마음에 들어서 받는 게 신뢰라면 누군들 못 할까. 책 지정 문제로 충돌했던 그날, ‘그래도 믿었는데!’라며 아빠가 치밀어 올랐던 날 녀석도 속으로 외쳤을 게다. ‘제발 날 믿어주세요!’

신뢰의 뒤끝이 어째 이럴까. 내 기대에 틀리더라도 혹시 내 기대와 틀리기에 필요한 게 신뢰 아닐까? (82쪽)


공감의 명찰을 꺼내 단 채 다시 대화에 나선다. 마침내 좌절한다.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흘러내려 버리듯 손 닿는 곳 너머로 녀석이 빠져나갔음을 느낀다. 말은 못 해도 직감한다. 바로 눈앞에서 부모가 닿지 못하는 세계로 빠져나가 버릴 거라는 걸. 공감할 수도, 붙잡을 수도 없을 거라는 걸. (182쪽)


아들과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아울러 총체적 난국을 모두 통과해 아들을 서울공대생으로 키워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끝으로 저물어가는 가을이 아쉬워 사진 몇 장을 남긴다.



백범광장 근처에는 유난히 강아지풀이 지천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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