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날 비웃는 것 같다

발표 트라우마

by 연필심

시간을 다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 보겠다.


고등학교 1학년, 발표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발표할 때, 동급생들과 교사들이 비웃는 것 때문이었다.


입학식 다음 날, 원어민 영어 시간의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내가 앞에 나와서 입을 열기도 전에 좌측 맨 앞 여학생 2명이 본인들끼리 낄낄대며 나를 쳐다보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다른 학생들도 비웃었다.

주눅 들었고,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발표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던 시발점인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미시 경제 첫 시간,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내가 발표를 하자, 동급생들이 비웃는 분위기가 되었다. 심지어 미시 경제 교사도 같이 웃고 나를 희화화하였다.


그리고 거시 경제 학기 마지막 시간, ppt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발표가 끝난 후 거시 경제 교사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전교생 중에 너처럼 ppt 못 만든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내 ppt 화면을 본인 컴퓨터에 띄운 후 위같이 말했다.

이후 주변에 있던 논술 교사가, 화면에 띄워진 내 ppt를 보고 비웃었다.


교무실 밖으로 걸어 나가서 문을 닫을 때까지,

거시 경제 교사와 논술 교사 둘이, 비웃고 조롱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따라 난 발표하거나 누군가 앞에서 나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보다 더 말을 더듬고, 상대방의 눈을 못 쳐다보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나 의도를 제대로 입 밖으로 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특목고 특성상, 발표나 토의 등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하는 일들이 정말 많았다. 그때마다 주눅 들고 긴장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날 비웃으면 어떡하지?’

‘내 어느 측면이 우스워 보이는 거지?

내 말투? 억양? 생김새? 표정? 아니면 발표 내용이 빈약한가?’

등의 생각들로 매번 불안했다.



그래서 1학년 2학기 때부터 2학년 2학기 때까지 모든 수업의 발표 준비를 열심히 하였다. 발표하기 위해 대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많은 분량의 대본을 조사, 어미 등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외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발표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모자랐다.


문제는, 발표에 거의 모든 시간을 쓴 나머지 막상 내가 집중해야 하는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은 관리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발표는 수행평가 영역에 포함된다. 발표 점수는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점수 차이가 보통 0.5점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타 동급생들과의 내신 성적에서의 차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크게 격차가 벌어진다.


즉 실질적으로 나의 대학 진학을 위해 내신 성적을 관리하려면, 발표가 아니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급생들과 교사들의 비웃음이 두려웠던 나머지, 나를 위한 선택을 하지 못했다. 결국 발표 트라우마는, 나의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에까지 악영향을 주게 되었다.



누군가가 앞에서 발표할 때 비웃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즉 발표자의 잘못이 아니라, 비웃는 청중들의 잘못이고 그들이 무례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잘못이라고 착각하였고, 나에게서 문제점을 찾고 그 점을 고치면 그들이 나를 비웃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무례한 사람들의 비웃음으로부터 생긴 수치심은 나를 괴롭게 했다.


결국 누군가 앞에서 내 의견과 생각을 말하는 일은, 내게 힘든 과업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발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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