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잘하는 사람들
정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보니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관심이 간다. 초면에는 내성적인 편이지만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용기를 내어 말을 거는 편이다.
직장에 정보실이 있다. 전산기기와 관련된 기기를 관리하는 곳이다. 고장 난 컴퓨터, 프린터 토너, 헤드셋들, 각종 선들과 CD들 등 지저분한 물건들이 많은 곳이다. 그곳은 늘 지저분했지만 그곳은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어느 날 정보실 실무원님께서 그만두시면서 새로운 분이 오셨다. 첫날부터 밀대를 들고 정보실 내부며 복도 바닥을 닦고 계신 모습을 본 게 첫 만남이었다. 며칠 후에는 빨간색 고무코팅이 된 목장갑을 끼고 물건을 옮기고 계셨다. 여성분인데 엄청 적극적으로 정리에 임하셨다. 빨간색 코팅에 먼지가 많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보실을 방문했는데 공간 가운데 있는 큰 테이블 위가 텅 비었다.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어 정리가 불가능해 보였는데 다 없어졌다. 바닥에 있던 각종 폐 토너들, 지저분한 케이블들 모두 어디론가 없어졌다.
“여기 있던 물건들 다 어디 갔어요?”
"캐비넷과 수납장에 넣었습니다."
"거기에 있는 물건은요?"
"못쓰는 물건들이 많더라고요. 불필요한 물건들은 다 버렸습니다."
10년도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대단한 변신이었다. 그 이후에도 그 공간은 정리된 모습 그대로 유지되었다. 너무 깨끗해져서 혹시 필요한 것도 버려서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다음 해에 다른 업무도 추가로 맡으셨는데 그곳도 완전 다른 공간이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정리를 잘하세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냥 웃으시면서
"성격이에요."
라고 하셨다. 특별한 비법들을 기대하고 물었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예상 답변보다는 너무 짧고 간단해 사실 좀 허무했다.
업무 수행도 완벽하셨다. 전산기기들에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그날 다 해결이 되었다. 모든 일들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완벽했다. 정리된 공간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다음 해에는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하셨는데 업무 수행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늘 여유가 있으셨다. 이전에 두 분이 일하실 때보다 이 분 혼자 일하실 때가 훨씬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컴퓨터나 과학 전공자인 줄 알았는데 패션디자인을 전공하셨다고 한다. 직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셨는데도 하시는 일들에 자부심이 있어 보였다. 깨끗하게 정리된 공간이라서 일도 잘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두 번째 인물은 인상적인 여선생님이다. 초등학교 교실은 늘 학생들의 학습결과물로 교실 안에 물건들이 많은 편이다. 그런 물건들이 학습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어지러워 보였다. 그래서 텅 비고 깨끗한 그 교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컴퓨터도 책상 주변도 너무 깨끗했다. 너무 말도 안 되게 깨끗하고 물건들이 적으니 의심이 되었다. 어디 안 보이는 곳에 막 쌓아놨겠지? 그런 의심으로 서랍과 캐비넷을 슬쩍 얼어보았는데 그곳들도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상 뒤 캐비넷에는 텅 빈 공간에 본인이 들고 다니는 가방만 홀로 있었다. 이런 사람에게는 비법을 물어야 한다.
"교실이 어떻게 이렇게 깨끗해요? 학생들 학습결과물들은 다 어디 갔어요?"
"깨끗한 지는 잘 모르겠요. 학생들 결과물들은 전시할 것은 전시하고, 가정으로 보낼 것은 보내고, 아닌 것은 버려요."
대답이 장황하지 않고 간단했다. 맞는 말이었지만 역시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다. 특별한 비법 같은 걸 기대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일반적인 대답이었다.
직업의식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교사 사회에서 말 잘 안 듣고 다투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이야기보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이들 귀엽다. 좀 힘들긴 해도 괜찮다 등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함께 부동산 투자 공부도 했는데 학습 능력이 대단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스스로 물건을 찾고 이 물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물어보는 물건들 대부분이 입지 대비 좋은 가격들의 물건들이었다. 내가 도움을 주기보다 그녀로부터 듣는 내용을 통해 쉽게 당시 부동산 상황에 대해서 파악하게 되었다. 다방면으로 입지와 시세 파악을 통해 본인 가용한 자금 내에서 가장 좋은 훌륭한 입지의 아파트 분양권을 하나 구입해 지금은 입주를 했다. 학습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깨끗하고 정리된 공간이 그렇게 추진하는 힘을 주는 것 같다.
세 번째 인물은 친구의 아내이다. 어느 여름 금요일 동네 친구와 저녁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동네 핫플레이스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이미 만석이다.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상황이 아니라 만석 식당에 대기를 하는 것도 불안했다. 친구에게 한가한 곳에 가자고 제안했더니 본인 집에 가서 먹자고 한다. 예고도 없이 찾아가는 집 방문 제안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처음에는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냥 아무 데나 가서 먹던지 집에 가자고 했다. 친구는 애들도 나가고 없어서 괜찮다며 자기 집에서 먹자고 집으로 배달음식을 시켰다. 무거운 마음으로 친구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친구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내 친구하고 집에 저녁 먹으러 간다~”
라고 통화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아내가 얼마나 싫을까? 더 부담스러웠다. 가는 길에 적당히 화분을 하나 사서 친구 집에 도착했다.
집 내부가 너무 깨끗하고 아늑했다. 인테리어 직후 공개하는 집 같았다. 거실은 소파와 TV장 위에 TV만 있고 베이지색 커튼이 전부였다. 조명도 오렌지색 조명이라 분위기가 아늑했다. 식사 전에 손을 씻었는데 욕실은 고급 호텔 막 체크인 한 것처럼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주방 식탁에는 깔끔하게 식사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깜짝 놀랐다. 집이 어떻게 이렇냐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냐고 물었다. 아내분 대답이 갑자기 온다고 해서 크게 준비한 게 없다고 한다. 평소에도 집이 이렇냐고 물어보니 평소에는 식탁 위가 좀 더 어지럽다고 이야기하는데... 평소 모습일 것 같았다. 미리 예고하고 가도 이런 집 상태를 만들기는 힘들 것 같은 상태였다. 세 명이 저녁을 먹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지배했다. 그래서 정리의 비법을 물었다. 특별한 건 없다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머뭇거렸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에게 비법을 물으면 반응이 이렇게 비슷하다. 계속 집요하게 물으니 비법을 이야기해 준다.
“그냥 정리하면 돼요.”
농담 같은 한마디였지만 정답이었다. 나에겐 울림이 있는 한마디였다. 정답이 가까이 있는데 그것을 찾아 아주 멀리까지 헤맨 기분이다. 정리된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은 그냥 정리하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이 친구를 좋아한다. 평소에 친구들과 만나면 합리적이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마음의 여유가 넘치고 주변에 늘 베풀면서 생활한다. 정리된 집에서 받는 편안한 에너지가 친구들에게도 전해지는가 보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정리에 대한 의욕이나 열정이 대단한 사람은 없었다. 정리에 대한 부담감, 압박감 같은 것도 없어 보였다. 그냥 정리하는 행동이 몸에 밴 것 같았다. 정리가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일상의 삶인 것이다. 정리가 삶이 되면 나처럼 정리하기 전에 의욕을 불태우거나 굳게 결심할 필요가 없다. 무의식적으로 하기에 정신적 에너지 소모도 0에 수렴할 것이다. 정리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리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