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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둘

by 파란


여지껏 우리 집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상사는 하나같이 남 보기 꼴사나운 모습으로 일어났다.


어린 날의 나는 불쌍하리만치 혼자 컸다. 내 이름보다 오빠의 여동생으로 더 자주, 더 많이 불렸다. 주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오빠가 성장을 하는 동안 나는 크기만 커졌다. 오빠의 비결은 공부였다. 영재 소리 들으면서 영어 유치원, 사립 초등학교와 중학교, 명문 자사고까지 붙었으니 말 다했다. 오빠는 부모님에게 자부심을 물어다 주는 개였다.

나도 처음에는 오빠를 따라 공부에 매진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때때로 노력은 사람마다 다른 가치로 매겨진다. 양과 상관없이, 그렇다고 질과도 연관 없이, 예측 불가의 환율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공부에 있어서 내 노력의 값은 딱 70점짜리였다. 아마 중학교 첫 성적표를 건네주던 순간이 엄마에게는 나를 향한 지원을 끊어내기로 확정 짓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성적표를 찢어버린 이후로 내가 이 꼴이 되기까지 되돌릴 기회는 두 번 정도 있었다.

첫 번째.

“엄마, 나 미술이 하고 싶어. 잘 할 수 있어. 우리 학교에서 내가 그림 제일 잘 그리잖아. 그래서 말인데, 나 예고 가면 안 돼?”

열여섯의 딸이 살금살금 질문해 보았다.

“안 되는 거 알면서 뭘 물어. 네 오빠 학원이 몇 갠지 알아? 그림이 밥을 먹여주니, 돈을 벌어다 주니. 하다못해 내 면이라도 세워주면 몰라. 넌 그냥 예쁘게 커서 잘난 남자나 하나 붙잡아라.”

엄마의 답은 뻔하게 지독하고 아프게 지루했다.

두 번째.

“너 트위터 계정 있어?”

이 말을 무시해야 했을까.

“그게 뭐야? “

“덕질할 때 쓰는데, 굿즈를 팔 수도 있어. 너도 한 번 해봐.”

내 멍청한 친구가 멍청한 권유를 했다.

그 애가 간과했던 트위터의 그림자는 나를 뒤덮었다. 꺼내기 싫은 기억이다. 그림자는 나의 얼굴 사진을 쥐고 벗은 몸에 가져다 붙였다. 살아 꿈틀대는 몸뚱아리 위에 얹어진 내 이목구비가 소름 끼쳤다. 고작 한 손에 들어오는 고철 덩어리의 영향력은 끔찍한 영상에 날개를 매달았다. 온통 새카만 매일이었다. 트위터는 삭제했지만, 인스타그램마저 지우진 못했다. 여전히 내가 받는 사랑의 총량은 부족하니까.


사랑받고 싶다. SNS는 만족스러운 수단이다. 개인이 불투명하니 그다지도 투명한 욕망이 보였다. 예쁘면 예쁨 받고. 돼지면 욕먹고. 순리고 수순이었다. 나는 감정을 먹고 자라나니 이보다 완전한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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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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