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우리 집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상사는 하나같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을 것이다.
아내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진부한 단어지만 그 외에 묘사할 형용사가 있긴 한가. 누구보다 큰 소리로 웃었고, 누구보다 화려하게 춤을 추었고, 누구보다 반짝이는 향기를 풍겼다.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친구들은 아내와 스치기만 해도 딱딱한 홍당무가 되는 나를 두고두고 놀렸다.
“네가 날 되게 좋아하는 모양이더라.”
아내가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건 순간이었다. 어른 중 제일로 어린 우리들은 청춘이라는 이름에 취해 결혼이라는 현실에 무감각했다. 순식간에 부부가 되었다.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아내가 계속 일을 하길 바랐다. 경력이며 학벌이며 뛰어나봤자 여교사는 흔했다. 나보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내는 강경한 태도로 밀어붙였다. 자신은 좋은 엄마이자 좋은 아내면 된다고. 나는 이십 대의 못난 청년을 선택해 준 아가씨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첫 아이를 본 날 뇌에 박힌 다짐이 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능력한 흥부보다 돈 많은 놀부가 되고 싶었다. 내내 달렸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몰라도 일단 돈이 필요했다. 고개를 땅에 처박더라도.
회식 자리에서 주식 투자를 했다 실패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왔다. 상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생전 콘크리트 닭장 못 면하는 너 같은 사람도 좀 위안이 될 게 아니니?”
난 참아내었다. 참고, 참고, 참고, 욕이든, 협박이든, 비웃음이든, 다 참았다. 게워 내도 또 쌓였다. 그마저도 참았다.
‘돈은 돈대로 먹는 늙은이야, 우리는 머리 잘 돌아가는 가성비 청년이 필요하단다.’를 내포한 회사의 마지막 예우는 정년퇴직이었다. 닭장에서 탈출한 나는 화면 속에 갇혔다. 나랏일 하는 높은 자들을 마음껏 욕하는 유튜버가 내 마음 한구석을 긁어주었다.
“사장님들 오셨습니까. 오늘은 경제가 이 모양인 이유! 만악의 근원인 정치인을 소개하겠습니다. 다들 짐작되시죠?”
암. 우리 서민의 피를 뽑는 모기들을 척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