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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넷

by 우연 Feb 14. 2025


여지껏 우리 집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상사는 하나같이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음에 틀림이 없다.


 엄마는 주정뱅이였다. 아니었던 날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죽음이 있고 나서 대체로 그러했다. 그런 대체로의 날이 나를 쓰라리게 했다.

 “엄마 바빠.”

 내가 가장 증오한 문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 같은 엄마는 아니기로 했다.


 운명은 버릇없는 애새끼이다. 무슨 장난만 쳐대는지. 나는 엄마로서 불합격도 아닌 실격인 짓을 저질렀다.

 “제 탓이에요. 제 탓이라니까요.”

 남편의 위로에도 세상을 집어삼킨 결말은 바뀌지 않았다. 눈이 뜨거운 액체로 가득 찼다. 눈물인지, 피인지, 용암인지. 아이를 유산했다. 나 때문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나는 진심으로 애정했다. 뱃속에 자리한 너의 삶을 항상 그렸다. 나와 닮았길 기대하면서도 남편을 닮았을까 궁금했다. 모빌을 사면서 마음에 들기를 소망했다. 아기 옷이 얼마나 조그만지 새로 배웠다. 육아 서적이 침실 한켠을 점령했다. 배를 움켜쥐어 보지만 긁어모아도 그 죽음의 흔적은 없었다. 손톱자국만이 선명하게 배 위를 가를 뿐이었다.


 결혼 3년 만이었다. 우리 아들이 나에게로 왔다. 내 인생의 천사였다.


 자식이 나쁜 일 당한 걸 부모에게 속이는 건 봤어도 부모한테 일 생긴 거 자식한테 숨기는 건 못 봤다. 그러니 부모는 자식이 당한 나쁜 일을 속속들이 알 필요가 있다. 나는 매일 저녁 6시에 아들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하는 일상을 살았다. 1시간 정도 아들의 하루를 들으면서 아들의 친구 관계를 메모해 두었다. 성적 관리는 따로 노트를 만들어두었고 학원 정보를 얻으려 맘카페란 맘카페는 다 가입했다. 최고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의 머리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상처가 났을 때 심장이 땅에 떨어졌다.

 “선생이 애가 저 꼴 나게 방치한 거예요? 정신 나갔어요? 남의 집 귀한 아들 머리가 찢어졌잖아. 의사가 흉터 무조건 남는다 그래요. 저 흉터 어쩔 건데. 열여섯 짜리가 친구랑 놀다가 지 혼자 책상에 박았다는 게 말이나 돼요?”

 나는 분노했다. 선생이 책임을 져야만 끝나는 전쟁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학교로 공격에 나섰다. 눈총은 이미 장전 완료였다. 전쟁은 선생이 학교를 나가고 끝나야 했다. 왜 내 아들이 방문을 걸어 잠근 거지? 아들아, 너는 내 아들이잖니. 최고로 가는 길을 깔아주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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