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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by 파란

여지껏 우리 집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상사는 하나같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고 나는 믿고 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해 겨울부터 어머니가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밤마다 계속되는 환각에 정신과를 수차례 다녔으나 무용지물이었다.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를 밝은 표정으로 맞이하기 위해 일그러진 얼굴로 잠에 들었다. 오빠가 새하얀 손으로 그 얼굴을 쓰다듬었을 때는 죽고 싶었다. 사랑하던 이들이 내게 원망과 증오를 퍼붓자, 그들의 일부마저 사랑한 나는 전부 끌어안아 버렸다. 어머니, 맞아요. 다 제 탓이에요. 제가 어머니를 짐짝으로 여겼어요. 그래, 오빠. 평생 사죄할게. 차라리 내가 죽어야 했어. 오빠는 지극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보았겠지. 고작 밥 먹이고 똥오줌 치우는 일에 다가올 죽음이 서두르기를 바라지도 않았겠지.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안을 품은 남지 않아 버렸다…. 집을 까맣게 잊어야 했다. 우리 집에서 또 누군가 다치더라도 일단 내가 더 이상 다치기 싫었다. 지쳤다. 내가 아닌 타인을 신경 쓰기 지쳤다. 집에 한시라도 머물러 있으면 당장이라도 어머니와 오빠가 드러내 보일 것만 같았다.


서둘러 외출할 준비를 했다. 옷을 걸치고 양말을 신고 가방을 챙기고 신발을 신고. 일련의 과정에서 불안감을 티끌이라도 쓸어내고자 했다.

“엄마, 또 술 마시러 가는 거야? 오랜만에 외식이라도 하면 안 돼? 우리 집 앞에 치킨집 생겼더라. 거기서 저녁 먹자.”

딸이 앵앵. 그만 좀 제발.

“엄마 바빠. 오늘은 집에 있어.”

한때 엄마로서 이런 말은 하지 말기로 다짐했었지…. 한때 엄마로서 이런 말은 하지 말기로 다짐했었지…. 그러니 병상에 누운 나의 의견을 묵살하는 가족만 남은 오늘은 내 업보에 불과하다.

“또 왔다. 하느님 맙소사, 또 왔어.”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웃고 있었다.

“또 왔다. 뭘 하고 있냐? 외출할 채비를 해야지, 어서.”

“엄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이 와중에 술을 찾는 거예요? “

“이러다 더 온다. 빨리 신발을 가져와. “

“엄마, 그만 좀 제발.”


암전이다. 망각의 구간이다. 내일이 무엇이었는지 잊는 시간이다. 즐겁다.


내 죽음을 논하는 자식과 그 배우자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아니, 이미 뜨고 있었으나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에미야, 나 좀 보자.”

나는 말짱한 정신임을 확인시켜 주고자 했다.

“왜요?”

“나 죽으면 묘지 쓰지 말아. 유언 삼아 말하는 거야, 뒀다 꼭 어김없이 해라. 나 죽거든 내가 느이 할머니가 바라던 대로 해라.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마라. 부탁이다.”

내가 어찌 딸에게 부탁하겠는가, 평생을 엄마답지 않게 살았는걸. 나도 안다. 부끄러우나 해야만 했다.

“할머니가 바라던 대로요?”

“꼭 그대로, 그걸 설마 잊고 있진 않겠지?”

“묻어드린 걸로 기억하는데…. 아닌가요? 언제 적 일인데 기억해요.”

“어머니는 강에 뿌려지시길 바라셨어. 부탁한다. 나는 그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글자마다 각오를 담아 말을 이었다.


딸은 퇴원하는 길에 내 손을 세게 붙잡고 속삭였다.

“엄마. 난 엄마를 사랑해서 추억할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유골을 강에 주어서는 내가 엄마를 뭐로 기억해요. 엄마는 내 삶을 버렸으니, 나는 엄마의 죽음이라도 가져야겠어요.”


아, 내 딸아. 결국 엄마를 닮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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