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껏 우리 집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상사는 하나같이 내가 집을 비우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되었다.
“장차 큰일 할 자식을 몰라보고 탐탁잖은 일이나 시켜 먹는 건 그럼 엄마의 도리니?” 엄마는 탐탁잖은 일을 안 시키려고 다른 일을 시켰다. 밤 10시에 학원가의 불빛이 번쩍이던 횡단보도를 걷는 나는 교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다. 독차지한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사랑받는 건 기뻤다. 그래서 더욱 막내를 미워했다. 지도한 학원 숙제를 꾸역꾸역 소화했던 것도 다 타고나길 명석하던 막내로부터 사랑을 독점하려는 시도였다. 내 발아래에는 성공의 길이 놓인 줄 착각했다. 모순되게도 그 길을 놓아준 엄마가 걸림돌이었다.
자식이 나쁜 일 당한 걸 부모에게 속이는 건 봤어도 부모한테 일 생긴 거 자식한테 숨기는 건 못 봤다. 그래서 속였다. 부모 탓에 난 소문의 존재를 악착같이 숨겼다. 소문이란 말도 안 될수록 말이 되는 법이라 엄마가 담임 선생님을 그만두게 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나는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의 꼭두각시 인형인 마마보이가 되었다. 일진이 나를 쥐어패 거나 하는 인기 있는 복수극에서 나오는 장면은 전무했다. 그냥 다들 나를 기피했다.
수학여행 방을 정하다가 나 혼자 남았다. 반 애들은 지들끼리 숙덕이더니 조용히 가위바위보를 했다. 진 쪽이 나를 끼워주었다. 웃어 보이려는 그 애들의 표정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조명 아래 비춰지는 몇 초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엄마를 뉴스에서 떠드는 진상 학부모로 이름 붙여서 복도에 걸어둔 것 같았다. 학교의 철문을 넘기가 죽기보다 무서웠다.
핸드폰은 버튼에 손을 올리기만 해도 됐다.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일 분마다 예닐곱 개의 글이 쏟아진다. 글들을 전부 정독하는 시간이 문제집 다섯 장 푸는 시간보다 가치 있었다. 그곳에는 혼자가 없었다. 우리는 함께였다. 모두. 핸드폰 화면의 그 작은 직사각형은 나를 웃게 하는 유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꽤 우월한 생명체라고 했다. 정치에 흥미가 생겼고 역차별에 분개하기도 했다. 외노자나 병신, 페미처럼 사회를 좀먹는 진드기를 배웠다. 유익한 수업이었다.
역시나 대학은 물 건너갔다. 쫓기듯이 간 군대에서 평생 나를 쫓아다니는 악몽을 얻었다.
“군 생활 편하다 이건가? 아프면 엄마한테 이르세요~”
나는 그가 나를 혐오하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몇 달을 갈아 넣었다. 정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안 보이는 곳을 피가 날 정도로 꼬집고, 내 물건을 대놓고 훔쳐 가고, 음식에 몰래 벌레를 섞는 수준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동생의 트위터 계정을 검색해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을 내게 보낸 것은…. 여동생을 협박도 했다는데 난 도저히 그 자식이 내 선임이라고 털어놓을 수 없었다. 왜 나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빨갱이 새끼들만 아니었어도 군대라는 공간에 올 일이 있기나 했을까. 왜 선량한 군인에 불과한 내게.
실패. 실패. 실패. 세상에 실패라는 단어가 사라지면 좋으련만. 그럼, 수만 가지의 사정이 있는 내 처지를 단순히 한 단어로 치부해 버릴 방도도 소멸할 텐데. 일을 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하고 경력이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한다. 땅을 일구면 열매를 수확하던 아빠의 세대와 달리 땅은 죄다 임자가 있는 시대다. 먼지 하나도 까만 원숭이랑 나눠 가져야 한다. “너희는 사람 말도 못 하면서 왜 내 자리를 뺏는 거냐?”
지하철에서 욱하는 마음에 원숭이 떼에게 시비를 걸었다. 건방진 눈알을 뽑아버릴걸 그랬다. 난 너와 달라.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타국에서 뼈 빠지게 일해. 그 눈알은 천천히 나를 밟았다.
엄마가 날 보는 눈빛이 변해갔다. 나는 최악을 보기 두려워 집을 나왔다. 최선만 골라 온 삶이 최악이 될 경우의 수가 있을까. 최선인 줄 알았는데 차악이었고, 나는 천천히 가라앉는 편을 택했던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무거운 죄악은 할머니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메일을 삭제한 것 아닐까? 악인에게 악한 가정이라는 서사를 쥐여주지 말라고들 하지만, 악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선인도 있다고들 하지만, 어차피 들어도 정당화 안 해줄 거 안다. 그렇다면 들어라. 일단 내 죄만 보고 판결을 내린 다음 의미 없는 독백을 들어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