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 위에 피어나는 다른 이야기들
저녁마다 동네를 빠르게 걷는 운동을 시작한 지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처음엔 그저 건강을 위해서였다. 시간을 내어 걷지 않으면 하루의 걸음 수가 너무 적기도 하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걷기라도 해야겠다’는 단순한 결심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밤 운동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퇴근길에도 밤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는 그 기분을 빨리 느끼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더구나 밤 공기가 제법 선선해 진 요즘은 나의 밤 운동 시간이 곧 힐링 시간이 된다.
밤이라 안전을 위해 늘 우리 동네의 같은 블록만 반복해서 돈다. 주택 단지 안이라 그 구역은 안전하고 익숙하다. 늘 일정한 방향으로만 계속 돌기 때문에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기식이다. 신기하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거나 질리지 않는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같은 길 위에서 매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아스팔트의 단단함, 바람결에 섞여 오는 흙내음, 밤 공기의 선선함이 계절에 따라, 하루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똑같은 길 같지만, 사실은 늘 새롭다.
같은 구역의 길을 돌다 보니, 늘 같은 집들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동네 특성상 담장이 낮은 주택 단지라서 밤 공기를 가르며 각 집마다 새어 나오는 소리와 불빛이 각양각색이다. 창문 틈 사이로 흐르는 음악, 텔레비전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부엌에서 들려오는 냄비 부딪히는 소리까지, 집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밤 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페달을 밟지 않은 정직하고 또렷한 피아노의 멜로디가 귀에 익숙하다. 때로는 선생님의 “다시, 천천히”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또 어떤 날은 연주가 끝나자마자 박수 소리가 터진다. “잘하네~” 하는 나이 지긋한 어른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어린 손주의 피아노 연주에 함박웃음 짓는 할아버지 할머니일까. 짧은 음악회에 우연히 초대된 기분마저 든다.
조금 더 걸으면 ‘탁 탁 탁’ 줄넘기 소리가 이어진다. 일정한 리듬이 내 발걸음마저 가볍게 한다.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줄넘기 실력이 상당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들리는 걸 보면, 줄넘기의 주인은 꽤 성실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키가 크기를 바라는 사춘기 아이일까, 부쩍 오른 허리 살을 빼고 싶은 갱년기 엄마일까.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그 의지 앞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에 힘을 얻는다.
사계절 내내 창문과 마당을 밝히는 꼬마전구가 유난히 많이 있는 집도 있다. 비가 오는 날 조차도 그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작은 전구들이 반짝이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진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현실과 비현실이 살짝 겹쳐지는 순간이다. 그 집은 사계절 내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질 것만 같다.
그리고 하얀 지붕 아래 큰 창문 앞에서 밖을 보고 있는 더벅머리 하얀 개. 하얀 더벅머리 사이로 까만 콩 같은 두 눈이 반짝인다. 내가 슬쩍 손을 흔들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준다. 마치 오늘 하루도 애썼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혹시 저 하얀 개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손을 흔들며 ‘내일 또 보자’ 속으로 인사를 한다.
저마다의 속도로 밤 산책을 하는 사람들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배달 오토바이와 트럭도 있다. 어두워진 동네를 누비는 오토바이와 트럭의 불빛은 마치 밤하늘의 유성과도 같다.
운동길에 밤마다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다. 두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걷는 노년의 부부, 이야기 반 웃음 반의 젊은 커플,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빠른 걸음걸이에 거친 호흡 소리가 제법 큰 숏컷의 중년 여성. 자주 서로 지나쳐 가지만 서로의 밤 산책이나 밤 운동을 방해하지 않으려 눈길은 오가지 않는다. 아마 저들도 속으로는 ‘저 여자 또 나왔네’ 하지 않을까. 모두 다른 속도로 같은 길을 걷거나 뛰고 있다. 저들은 각자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
아버지와 아들.
나의 밤 운동 시간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내 눈과 마음을 가장 오래 붙드는 이들이다. 오늘 밤도 저기 저 아버지와 아들은 밤 산책을 나왔다.
아들의 체구는 아버지의 두 배는 되어 보인다. 아들의 걸음은 서툴고 버겁다. 큰 팔이 아버지의 어깨에 걸쳐 있고, 아버지는 부축하듯 아들을 이끈다. 중년은 훨씬 지나 보이는 아버지지만, 아들의 팔을 지탱하는 그의 몸에서 단단함이 느껴진다. 아들은 금세 숨이 차는지, 발을 끌 듯 느리게 걷는다. 아버지는 그 속도를 맞추어 한 발, 또 한 발 걸음을 이어간다. 마치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온 일상의 의식처럼.
밤 운동을 시작했던 두어 달 전에도 저기 저 아버지와 아들을 보았다. 열대야가 심한 터라 한밤에도 열기가 가시지 않았던 그때도 아들은 무거운 팔을 아버지의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나는 ‘저 아버지는 얼마나 덥고 힘이 들까’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저기 저 아버지는 묵묵하게 아들의 무게를 지탱하며 아들과 함께 걷는다.
가로등 불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 뒷모습은 묵묵하고, 슬프지만 동시에 그 어떤 장면보다도 따뜻하다. 나는 왠지 그 발걸음을 비껴서 앞서가고 싶지 않다. 그들 뒤를 조용히 따라 걸으며, 어느새 내 발걸음을 늦춘다.
여름에 시작한 나의 밤 운동은 어느새 가을로 이어지고 있다. 귀뚜라미 소리는 더욱 커지고, 반팔 차림은 서늘해졌다. 피아노 소리는 여전히 담장을 타고 넘고, 줄넘기 소리는 끊이지 않으며, 꼬마전구는 변함없이 반짝인다. 그리고 아들을 단단히 지탱하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의지해 걷는 아들. 그들의 밤 산책도 이어지고 있다. 밤하늘의 달과 별은 날마다 그 모양과 수를 달리하며 우리의 머리 위에 떠 있다.
밤 운동의 발걸음은 때로 숨이 차고, 때로 등에 땀이 배며, 또 때로는 걷는 듯 마는 듯 느리게 달라진다. 그날의 컨디션과 일과에 따라 가벼운 발걸음도 있고, 무게에 눌리는 발걸음도 있다. 우리의 삶의 발걸음, 그 무게와 속도도 매번 달라진다.
밤이 되면, 낮에는 보지 못한 풍경이 드러난다. 같은 길 위에서도 매번 다른 이야기가 피어난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오늘을 배우고, 내일을 준비한다.
나는 내일도 이 길을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