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고야 만다.
살짝 고민했다. 데울까, 말까. 결국은 데우기로 했다.
내 선택에 대한 만족감만큼이나 따뜻하게 퍼지는 라떼 향이 선선한 아침 바람과 섞인다.
지난밤 귀뚜라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동네 밤 산책길에 달은 또 얼마나 크고 밝던지. 새벽녘엔 차가운 공기에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모닝커피 한 잔의 온기가 내게 계절을 알려준다.
여름 내내 찬 우유에 커피를 부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컵을 쥔 손끝으로 전해진 건 시원함이 아니라 차가움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커피머신으로 갈 것인가, 전자레인지로 갈 것인가. 그리고 결국, 우유를 데웠다.
우유를 데웠으니 가을.
이렇게 나의 또 하나의 가을은 시작되나보다.
우리 집 마당의 공작단풍.
너는 늘 가을이라 좋겠다.
서툰 정원사의 손길에도 제법 멋진 청년 공작이 되었구나. 가지 하나가 길게 늘어져 오히려 이름값을 한다.
봄에도, 여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너는 늘 가을이었다.
짙은 푸르름 속에서도, 생명의 냄새가 가득할 때도 너는 묵묵히 가을을 품고 있었지.
너는 그렇게 늘 가을이라 좋겠다.
이게 뭔가 싶었다. 허리를 굽혀서 보니 노오란 구슬같은 은행알들이 데굴데굴 떨어져있다. 꼭 이렇게 성급한 애들이 있다. 고개를 들어 은행나무를 보니 아직은 초록빛이 가득한데 그 틈에 몇몇 은행알들이 ‘가을이라며?’하고는 동글동글 몸을 불리더니 아직은 뜨거운 보도블럭으로 이렇게 낙하를 했나보다.
마음같아서는 ‘아직은 더 매달려있어도 된단다’ 하며 다시 푸른빛 가득한 은행잎사귀 사이에 붙여주고 싶다. 벌써 여러 개 짓이겨져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은행알도 있었다. 성급하게 떨어진탓일까. 꼬릿한 냄새조차 아직 없는데.
다시 고개들어 은행잎을 보니, 초록은 초록인데 그 빛이 확연히 여름과는 다르다. 노오란 물 아주 살짝 스며들기 시작하니, 한결 따스한 초록이다.
우유 한 잔의 온도, 늘 가을을 품고 있는 단풍, 성급히 떨어진 은행알.
모두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갈 때는 가고, 올 때가 오고 있다는 것을.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인데, 왜 아직 그대로일까.’ 기다림이 길어지면 우리는 쉽게 지쳐버린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조금만 더 버티자” 하다가도, 정작 변화가 오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어진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귓불을 스치는 바람 한 줄기, 어둠 속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빛줄기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갈 때가 가고, 올 때가 오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를 다시 걷게 한다.
뜨거웠던 여름이 마침내 자리를 비켜주듯, 인생의 계절도 그렇게 찾아온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건너고 있을지 모른다.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일 수도, 아이 양육에 지쳐 있는 부모일 수도, 혹은 퇴직 이후의 길 위에 서 있는 중년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데, 왜 아직 그대로일까” 싶은 시간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작은 징후를 붙잡으며 버틴다.
우유 한 잔의 온도 변화, 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순간, 나무 잎에 스며드는 미묘한 색깔처럼.
그 사소한 변화들이 우리에게 말해준다.
“곧 달라질 거야. 올 것은 오고야 만다.”
계절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아무리 늦게 오는 듯 보여도, 결국은 바뀌었다.
지난 계절 동안 불확실한 기다림 속에서 여러 번 흔들렸지만, 결국 가을은 왔다.
그리고 우리 모두, 제각각의 가을을 이렇게 기다려왔다.
우유를 데웠으니, 가을이다.
그리고 믿는다. 갈 때는 가고, 올 때는 온다는 것을.
가을, 너를 참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https://youtu.be/kmWZh6hxqYo?si=bOi43U_aa5g-_847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