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참조의 오류
"혹시 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마다 저는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곤 했습니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거나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연락하는 일조차 때로는 큰 도전으로 느껴졌죠.
고등학교 시절 겪은 일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용기를 내어 카톡을 보냈는데, 평소와 달리 답장이 오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복잡해졌습니다.
"혹시 내가 뭔가 실수했나?",
"내가 불편한 존재였던 걸까?",
"나만 우리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신경이 쓰였습니다. 다음 날 알고 보니 친구는 단순히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것뿐이었어요.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제가 경험한 불안과 걱정은 한동안 제 마음에 남아있었습니다.
또 다른 기억은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의 일입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저는 농담 하나를 던졌어요. 제 나름대로는 재치 있다고 생각한 농담이었죠.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어요. 그 순간 저는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내가 너무 이상한 말을 한 걸까?",
"다들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
"이제 나를 재미없는 사람으로 볼까?"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죠.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들은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서 제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불편함과 자의식은 그 후로도 가끔 비슷한 상황에서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대부분 "별것도 아닌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마"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은 조금씩 외로워졌습니다. 제가 느끼는 불안을 다른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점차 제 고민을 나누는 게 조심스러워졌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작은 일들에도 의미를 많이 부여하게 되었어요. 때로는 사소한 행동을 할 때도 망설이게 되었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런 반응들을 자주 저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마음이 반복되자 '왜 나만 이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조사를 하던 중 제가 경험하던 것이 '자기 참조'라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참조란 외부의 정보나 상황을 자신과 연관 지어 해석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가 갑자기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자기 참조적 특성이 있는 사람은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일로 우리 관계가 나빠지진 않을까?"
"다음에 약속을 잡자 하면 거절당하지 않을까?"
이처럼 단순한 상황에서도 자신과 관련된 부정적인 가능성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이 바로 과도한 자기 참조적 처리의 예입니다.
이 개념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던 중,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견했습니다. 사회 불안 장애 환자들의 뇌에서 나타나는 자기 참조 현상을 뇌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였죠.
연구에 따르면, 사회불안장애(SAD) 환자들은 사회적 불안과 관련된 장면(연설하기, 면접 보기, 토론 장면)을 볼 때, 자기 참조와 관련된 뇌 영역이 더 많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이는 곧 그들이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과도하게 처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즉, 이러한 장면을 볼 때 자신과의 연관성을 더 크게 느끼거나, 자신의 불안감을 강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뇌 영역들이 활성화됩니다:
1. 섬엽(insula): 감정의 인식, 특히 신체적 감각과 자기 인식을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 후두엽(precuneus): 자아 인식, 자기 성찰, 그리고 자기 관련 기억과 연결되어있는 뇌 영역입니다.
3. 배측 내측 전두엽(dorsomedial prefrontal cortex): 사회적 판단과 자기 참조 처리에 관여하는 영역으로,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를 생각할 때도 활성화됩니다.
이러한 뇌 영역들의 과도한 활성화는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과도하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결과적으로 불안이 더욱 증폭될 수 있는 것이죠.
이 연구 결과는 제게 큰 통찰과 위안을 주었습니다. 제가 경험하던 불안이 단순한 개인적 문제나 '호들갑'이 아닌, 뇌의 특정한 반응 패턴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고, 자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불안한 생각이 찾아올 때면, 저는 잠시 멈춰 서서 깊게 숨을 들이쉽니다. 그리고 조용히 자문합니다. "혹시 이게 또 내 마음이 만들어낸 자기 참조의 오류는 아닐까?" 이 간단한 질문이 저를 현실로 돌아오게 해주죠.
예를 들어, 얼마 전 친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한참 동안 답장이 없었어요. 예전의 저였다면 "아, 내가 뭔가 실수했나?"라는 생각에 빠져 밤새 뒤척였겠죠.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잠깐, 이건 정말 나 때문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려 노력했어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보기 시작했죠. "지난주 친구가 바쁘다고 했었는데, 아직도 일이 많은 걸까?", "며칠 전 인스타에 여행 간다는 글을 올렸던 것 같은데, 혹시 지금 여행 중일까?"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리니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더라고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서, 용기를 내어 직접 물어봤어요. "여행 잘 다녀왔어? 요즘 좀 바빠 보이던데." 놀랍게도 친구는 금세 답장을 보내왔어요. "앗, 미안해! 여행 가느라 정신없었어. 이제 막 돌아왔어."
이 순간 저는 미소 지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며칠 동안 불안해하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했겠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작은 용기와 객관적 사고로 불필요한 걱정을 피하고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작은 변화가 제 삶을 얼마나 가볍고 자유롭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자기 참조적 사고에 사로잡힐 때, 잠시 멈춰 보세요. 그리고 조용히 자문해 보세요. "이것이 현실일까, 아니면 내 마음이 만들어낸 자기 참조의 오류일까?" 이 작은 질문이 우리를 현실로 데려다 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걱정이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이런 인식의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에 작지만 의미 있는 평화가 자리 잡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