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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Oct 20. 2024

에피소드 3: 천사의 이면

하진은 유진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그녀가 봉사활동을 하던 요양병원을 찾았다. 유진은 이곳에서 수년간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병원 환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왔다. 그녀가 마지막까지도 마음을 두었던 곳이기에, 이곳에 그녀의 죽음과 관련된 단서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도착한 하진은 접수처에 있는 간호사에게 다가가 유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물었다. 


“유진 씨가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많이 했죠?”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유진 씨는 정말 열심히 도와주셨죠. 모두에게 친절한 분이셨어요.” 


“혹시 최근에 유진 씨가 이곳에서 무슨 일 때문에 힘들어 보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나요?” 하진이 신중하게 물었다. 


간호사의 얼굴에 잠깐 망설임이 떠올랐다. 


“음... 사실 얼마 전 유진 씨가 많이 지쳐 보이긴 했어요. 무언가 고민이 깊은 것 같았죠. 특히 요즘은 이 병동에 있는 한 환자와 자주 얘기했어요.” 


“어떤 환자죠?” 하진은 촉이 왔다. 그 환자가 유진의 마지막 선택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간호사는 하진을 3층 말기 환자 병동으로 안내했다. “유진 씨가 가장 자주 찾아갔던 환자는 최명호라는 분이에요. 요즘 많이 위독해지셨죠.” 


하진은 안내를 받아 병실 문 앞에 섰다. 문 안쪽에서는 약한 신음 소리와 함께 산소마스크의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최명호라는 이름의 환자는 침대에 누워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진은 병실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진 씨의 친구입니다. 유진 씨가 자주 오셨다고 들었어요.” 


최명호 환자는 힘겹게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흐릿했지만, 유진의 이름이 언급되자 잠깐 눈이 반짝였다. 


“유진... 그 친구...” 환자의 목소리는 약하고 끊겼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유진에 대한 깊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 친구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하진은 환자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유진 씨가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셨나요?” 


환자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나에게... 이건... 마지막 선물이라고 했어...” 


“무슨 선물인가요?” 하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 운동화... 내 아들한테 주겠다고...” 환자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유진 씨가 정말 미안하다고... 그 말을 남기고 떠났어.” 


하진은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유진이 그토록 죄책감을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 환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의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진은 요양병원에서 돌아온 뒤, 유진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그녀의 일기 속에는 단순한 선의 이상의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가 도왔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모두 도움이 아니라 집착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진은 조심스럽게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마다 남아 있는 유진의 필체는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을 거야.” 


“강민에게 너무 기대를 걸었나? 그가 잘 살지 못하면 내 도움이 무의미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해. 그래야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 


하진은 이 글들을 읽으며 유진의 마음속에 있던 고독과 강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유진에게 도움은 단순한 선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목적이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도움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녀의 실패를 의미했다. 


일기에는 강민과의 관계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었다. 유진은 강민에게 보내는 감정 속에서도 과한 집착을 보였다. 


“강민이 내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가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한 일은 아무 의미가 없어.” 


“내가 더 노력해야 해. 끝까지 도와야만 그가 무너지지 않을 거야.” 


하진은 이 구절들을 읽고 유진의 마음을 깨달았다. 강민을 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녀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유진은 강민의 삶을 통제해야만 그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민은 그런 유진의 기대를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유진이 봉사활동을 했던 요양병원에서도 그녀의 도움에 대한 집착은 드러났다. 최명호 환자에게 새 운동화를 선물하며 유진은 간절하게 말했다. 


“이 운동화만큼은 꼭 당신 아들에게 전해주세요. 그게 제 마지막 부탁이에요.” 


그녀에게 운동화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마지막 시도였다. 그녀의 선의가 의미 있는 결과로 남아야만 그녀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명호의 아들이 운동화를 받지 못하거나, 그 선물이 무의미해질까 두려워했던 유진은 끝내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하진은 요양병원에서 돌아온 뒤, 유진의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그녀의 일기 속에는 단순한 선의 이상의 감정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가 도왔던 사람들과의 관계는 모두 도움을 넘어선 집착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진은 조심스럽게 일기장의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마다 남아 있는 유진의 필체는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을 거야.” 


“강민에게 너무 기대를 걸었나? 그가 잘 살지 못하면 내 도움이 무의미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해. 그래야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 


하진은 이 글들을 읽으며 유진의 마음속에 있던 고독과 강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유진에게 도움은 단순한 선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목적이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도움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녀의 실패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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