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라는 말은 이제 제법 촌스러워졌다. 그래도 외국 술들을 우악스럽게 한데 묶을 수 있는 명칭으로 양주라는 말만 한 게 없다. 앞으로 한 이십 년 뒤면 양주라는 말을 더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양주,라는 단어가 제법 마음에 든다. 맛은 모르겠지만 되게 독하고, 거칠고… 고급스러울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음지의 어떤 것일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단어다. 물론 내가 그런 걸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런 느낌을 주는 단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울 뿐이다.
요새야 위스키니 보드카니 브랜디니 나름 명칭을 잘 불러주지만 내 윗세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랗고 독하고 외국술이면 다 양주라고 불렀다. 나도 성인이 되기까지는 그렇게 불렀다.
한 때는 소주 맥주 막걸리 밖에 없는 한국의 음주 문화가 뒤떨어진 문화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홍차 이야기를 하면서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내가 촌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또 문화적 교육적 측면에서 봤을 때 하층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해, 심지어는 내가 가진 생활 습관이나 교양,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까지도 부끄러워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좀 지나칠 정도의 부끄러움이었는데, 나는 그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 그런 것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사실 그 이전에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던 때도 있었다. 수치심 이후에는 그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는 내가 그것들을 한 번 해보겠다, 향유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전자가 스무 살이었다면 후자는 스무 살 중반쯤의 일이다.
나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카페라는 곳도 안 가보고 도시를 제대로 걸어본 적도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타보고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이마트 같은 곳은 갈 수 있어도 백화점은 문 입구조차 열 생각을 못했다. 그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왠지 백화점만 가면 위축이 된달까. 내가 가서는 안 되는 곳인 것 같고, 가격을 물어봤다가 왠지 모를 무시와 수치만 당할 것 같은 그런 기분. 조명은 너무 밝고 향수 냄새는 코를 찌르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가장 지독한 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도 모르게 옷처럼 입은, 가난이라는 정서였던 것 같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그 옷을 벗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속옷은 여전히 바꾸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까... 그건, 온통 메이카(우리 엄마는 브랜드 옷을 그렇게 불렀다)로 떡칠을 하더라도, 아무도 보지 않는 빤스는 그냥 떨이를 입는, 그런 거랄까. 그러다 옷을 벗게 될 일이 있으면 드러나는 것이다. 가난의 정서는 내게 지금은 그 정도에 머물러있다.
우리 집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도시에 사는 여타 직장인들보다도 아빠와 엄마는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였다. 그건 중산층 이상에 가까울 정도였는데 우리 부모님은 항상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 또한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물적자원이 많다고 해서 가난하지 않냐 하면, 그 외의 요소들이 가난이라는 정서에는 많은 영향을 준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같은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은 교육에서 뒤처져 있는 사람들이었고, 시골에 살면서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사람이었으며, 문화적, 교양적으로도 수준이 많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수준이 부족하다,라고 말하면 어딘가 좀 거친데 지금 당장 그것을 달리 표현할 언어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계급, 이라고 말하면 그 역시 거친 느낌이 있지만 쉽게 그냥 계급이라고 말해보겠다. 계급을 정하는 데에는 부유의 정도로 충분하지 않으며, 그 부유에도 여러 차원의 것들이 있다. 그 차이에서 어떤 요소들은 단순히 자신들에게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에서 그치지만, 어떤 요소들은 수치심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스물 초반의 어떤 날에, 스테이크라는 걸 처음 먹어보던 내가, 포크와 나이프를 잘 다루지 못해서 앞에 있는 어떤 교수가 포크와 나이프도 잘 못쓰는 애들은 해외에 보내면 안 된다느니 하는 말을 했을 때, 그 말에 굉장히 주늑이 드는 그런 것. 사실 스테이크라는 게 시골에서 해물찜이니 족발이니 하는 것과 비교해서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그 음식이 주는 어떤 정서가, 시골 사람들에게는 먹다 체할 것 같은, 이상에 가까운 음식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그런 음식들이 있다. 그리고 뒤늦게 그 교수의 말이 농담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그건 그냥 농담 아니야?라고 타인이 말해줬을 때다. 그것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내가 도시에 어느 정도 물들었다고 생각했을 때에야 그 말을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농담은 그 사람이 가진 조건들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 없고, 오히려 상처만 주기도 한다. 그런 농담을 다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런 농담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농담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상황을 긍정할 수 있다. 자학이지만 동시에 긍정인 자학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느냐 하면, 포크와 나이프를 쓰는 연습을 했고, 와인을 취미로 하려고 공부했으며, 위스키를 거쳐 칵테일을 공부하고, 이제는 홍차 따위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앞서 양주라고 말한 것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설명을 쏟아부을 수 있다. 그것들이 별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양주와 나,라고 해놓고 양주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양주 이야기를 했다. 충분히 마친 것 같다. 불콰하고, 씁쓸하고, 조금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