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관찰자 25년 차. 1편.

왜 서로를 싫어할까?

by 겨울나무

오늘도 어김없이 별것도 아닌 걸로 신경전이 오간다.

그 중간에서 나는
'저런 생각할 수도 있지, 아 좀 그러면 어때?'
라며 속으로 중재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가 옆에 있어줄 수 없는 노릇이니,
참고 알아서 하기를 지켜본다.

그리고 조용히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수백 번의 싸움을 지켜본 결과,
서로를 싫어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하던 행동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하던 행동을 서로에게 하고 있었다.

두 분의 생각은 내가 모르니, 싫어하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걸 어떻게 중재하면 좋을지는 눈에 보였다.

싫어하면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논리고 뭐고,
하는 꼴이 다 마음에 안 든다.

그걸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싫으면 싫을수록 사고회로는 나에게는 관대, 남에게는 엄격해진다.
반대로 좋을수록 사고회로는 나에게는 엄격, 남에게는 관대해진다.

너무 싫으면 상대방의 입장을 배제하려고 하고
너무 좋으면 자신의 입장을 배제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싫어도
좋아도

사고회로의 균형을 맞추려는 훈련을 미리 해두어야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따지려는 순간, 희생하려는 순간.
잠시 마음을 객관적인 선상에 놓고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두 분에게는 내가 모르는 오랜 실망감이 쌓여있는 듯했다.

아빠는 엄마를 너무 과보호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엄마에게 부지런할 것을 요구한다.

엄마는 아빠를 너무 과의지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직도 남의 집 남편과 비교하며 더 잘해주기를 바란다.

분노의 이유는 "이 정도는 해줘야지"하는 자신만의 잣대 때문이다.
'상대가 부족할 수도 있음'을 가정해놓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의 행동을 그저 '악의'로 해석하게 된다.

어쩌면 이전에는 서로를 좋아하며 했던 희생에서,
자신을 많이 잃어서,
이제부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싫어함을 택한 지도 모르겠다.

서로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는
너그러움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을 보며,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탐구할 수 있었다. 이는 간사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경각심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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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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