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차분한 이유.
무언가를 계기로 싸우고 싶어질 때 순간 화를 잠재우는 나만의 문장이 있다.
"괜찮은 척하니까 괜찮던데"이다.
그럼 잠깐 머릿속이 멈칫하면서 몽롱해진다.
어릴 때는
괜찮은 척하는 것은 거짓말이고
솔직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좋아하면 좋은 티를 내려고 애썼고
싫어하면 싫은 티를 내려고 애썼다.
그러면 내 직성은 풀리겠지만 상대방에게는 결코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부담이 되지 않게 좋아하는 티를 덜 내고
상처가 되지 않게 싫어하는 티를 덜 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사람과 갈등을 통해 배웠다.
이런 식으로 기쁘다고 날뛰지 않고 기쁘지 않은 척 숨기려다
때로는 정말 기쁜 마음을 잃었다. 이건 좀 속상했다.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이걸 부정적인 감정에 적용해 보았다.
슬프다고 가라앉아 있지 않고
안 슬픈 척 숨기려다 정말 슬픈 마음이 없어졌고
화가 난다고 씩씩거리지 않고
안 화난 척 숨기려다 정말 화가 누그러졌다.
간혹 자는 척을 하려다 잠들 때도 있듯이
내 마음은 은근 단순한 것 같다.
이렇게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면, 이왕이면 부정적인 감정은 안 드러내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갈등을 회피하고 싶은 순간의 감정은 세 가지 정도 된다.
1. 갈등하는 사이 울어버리거나 화내는 등 감정적인 모습이 드러나면 창피하다.
2. 상대방의 반응이 예상이 가니까, 그 반응을 보고 싶지 않다.
3.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고 싶지 않아서 보호본능으로 갈등을 회피한다.
그렇다고 갈등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갈등은 과분한 마음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꿍해있다가 그걸 상대방에게 말하고 나니 내 예상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상대방에게 놀라는 순간도 10% 정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90%가 나를 거만하게 만든다. 상대방의 생각마저 내 계산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기간이 길었다.
그래서 싸우는 게 이득일까? 참는 게 이득일까?처럼 단순한 생각을 넘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꼭 내 진심을 전할 필요가 있을까?
내 진심까지 알게 할 만큼 중요한 사람인가?
꼭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
이 상황을 바꿔서 내가 얻는 게 뭔데?
사실을 밝히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어서 싸우려는 걸까?
진심을 잃어도 내 감정보다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 참으려는 걸까?
도망쳐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모든 문제에 맞부딪칠 필요는 없다.
그 순간 내가 어느 쪽을 더 원하는지 집중해서 결정해야지.
오늘의 글이 좀 정신없다고 느꼈다면 성공이다.
생각을 일부로 복잡하게 꼬아서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뇌가 지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화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나는 우스개로 스님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교적 차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내가 겉으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저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머릿속에서 입장 전환이 빨라서 감정을 드러낼 틈이 없기 때문이다.
지인들한테는 절대적으로 비밀인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