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주연과 조연의 차이는 간절함이 아닐까?

by 겨울나무

2024. 12. 02. 메모

나는 어릴 때 TV를 좋아했다.
딱히 공부를 시킨다거나, 적당히 놀도록 통제하는 부모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고 싶은 만큼 봤다.

왜인지 주인공보다는 주인공 옆에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연이 되고 싶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해 내는 주인공보다 주인공의 성공을 위해 희생되는 조연이 멋있어 보였다.

아직 별일 안 겪어본 어릴 적부터 그래왔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누군가 하고 싶어 하면 바로 넘겨줬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남이 좋아하면 금방 포기했다.

하지만 음식은 조금 달랐다.
좋아하는 음식은 조금 더 먹으려고 했고,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남이 먹도록 남겼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사실은 간절하지 않았던 거면서 내가 배려심 있다고 착각해 왔다는 걸 알았다.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 기필코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까 남이 하고 싶은 일을 적당히 나도 하고 싶어 하는 척하다가 양보하면서 자존감을 채웠다.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남이 좋아하는 사람을 적당히 나도 좋아하는 척하다가 포기하면서 힘든 척 위로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굳이 하고 싶은 일을 만들지 않고, 굳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도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을 만큼 간절한 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생길 때까지는 열심히 조연으로 일하는 것도 좋은 일 아닐까?

나처럼 애매한 사람이 있으니까
아름다운 사람이 더 빛나는 거야.
내가 꼭 가장 밝을 필요는 없지.

누군가는 '주인공이 될 자신이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 변명하는 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2025. 08. 17.

나는 정말

주인공이 되고 싶을 만큼 눈이 반짝였던 순간이 없었나?

음식만큼? 아니 음식보다 간절했던 일이 없나?


위에 메모를 보며 고민해 봤다.


운동선수이려나?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경기 상황 따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참여하는 운동선수 모습에 빠져들었다.


아니다.

꼭 TV 중계가 아니어도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저 순간 내가 저 자리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던 같다.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축구하는 애들을 보면 나도 달려가서 하고 싶었다.

집 주변에서 동네 사람이 농구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공이 잡고 싶었다.

길가면서 열심히 달리는 사람이 지나치면 나도 뛰고 싶어졌다.


그것이 드라마 속 픽션이라 할지라도 뭐든 상관없이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요동쳤다.


이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생각해 보면

한 번도 잘하는 운동이 없었고

오히려 힘도 체력도 항상 부실했다.

그리고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 나처럼 운동에 설레어하는 줄 알았다.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역으로 간절한 줄 몰랐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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