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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Oct 22. 2024

돌이야. 누나는 아직 널 못보내겠어.

너의 체취를 그리며...

돌이야!

라고 부르면 이제라도 발톱소리 탁탁탁 내며 마루를 가로질러 누나에게 올 것 같은 돌이야....


오늘은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려.

네가 묻힌 그 강가에도 가을비가 나리겠지...

지난주에 형아와 누나는 컨디션이 나빠서 문호리 네 나무를 찾아가지 못했어.

지지난주에 네 유골을 묻은 자리인걸 누나와 형아만 아는 표식으로 얹어놓은 돌위에

흙을 좀 더 덮어주고 왔으니 비가와도 괜찮을까... 아님 비에 흙이 씻겨가 돌이 뽀얗게 드러나 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다가 해꼬지 당하진 않을까.... 노심초사.....


오늘은 네 물건을 다 정리하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었던

네 물건 몇가지를 모아둔 상자를 오랫만에 꺼내보았어.

네가 하던 하네스, 네가 하던 목줄, 네가 어릴때 터그놀이하던 실뭉치...

털이 많아 별로 필요 없었지만, 너무추운 겨울이면 산책할때 종종입곤 했던 옷.

백내장이 걱정되어 마련했지만 끼고 나가면 사람들이 멋지다고 해준 네 선글라스...

그리고 네 노즈워크판.......네 식탁 의자에 깔았던 방석...

너의 체취가 남아 있나 코를 대고 깊은 숨을 들여  마셔봤지만

별로 네 체취가 남아 있지 않더라...

너는 다른 강아지에 비해 체취가 강한 강아지는 아니었어.

어쩌면  네가 함몰 항문낭이었던지라. 그래서 체취가 별로 없었던 걸까...

깔끔쟁이였기때문에 스스로 그루밍을 잘해서였을까....

나지 않는 네 체취를 안타까워 하며 너무 깔끔하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훌훌 떠나버린 네가

너무 원망스럽다가.... 그립다가... 미안하다가... 보고싶고 보고싶어서... 안아보고 싶고, 쓰다듬고 싶고,

부비부비하고 싶고.. 뽀뽀하고 싶어서....안 울려고 했는데 또 울고 말았어.


어릴때 너는 터그놀이를 아주 좋아했어.

단단하게 꼬인 실뭉치 장난감을 던져주면 신나게 뛰어가 입에물고 와서는

누나한테 주지는 않고 꽉 물고서는 빼앗아봐라며 힘겨루기를 했었지.

터그 놀이는 프리스비 할 때도 했었어.

형아가 던져준 프리스비를 물고 와서는 주지는 않고 터그놀이하자고 보챘지..

때로 누나는 너의 이가 상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네가 마지막 하늘나라 갈때까지

이는 튼튼했으니까.. 어쩜 어릴때 자주한 그 터그 놀이가 네 이를 튼튼하게 만들어줬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나이가 든 후부터 터그놀이도 프리스비에도 별로 크게 신나하지 않았는데

누나는 그게 나이들어 점잖아져서 이런 놀이를 잘 안하나.. 했지만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네가 다리가 아팠기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


1살무렵 터그놀이를 좋아했던 너.



다른 강아지들은 최애 장난감도 있고 최애 담요도 있다는데

너는 어쩜 그리고 물욕도 없었는지... 어렸을때부터 장난감도 그다지 즐기지도 않았고 그냥 방치했어.

누나가 사준 장난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니?

그 바람에 네 장난감은  때때로 집에 놀러온 도비에게 주기도 했었지.

도비는 네 장난감들을 잘 쓰고 있대.


장난감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네가 신나게 즐겨한건 노즈워크였다.

산책할때도 여기저기 냄새맡고 다니는 걸 좋아했던 네 취향에 딱 맞는게 노즈워크 판이었던 것 같아.

노즈워크 판은 누나가 외출할때만 꺼내서 하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규칙을 정했나 모르겠다.

누나가 집에 있을때도 얼마든지 노즈워크를 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쓸데 없는 규칙을 정해서 너를 감질나게 했는지....

너는 분리불안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누나가 외출하는 순간이 힘들지 않도록

그 순간 좋아하는 걸 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네가 좋아하는 걸 하게 해줬으니 괜찮다고 누나 스스로 안심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라.

어쩌면 누나가 너와 분리되는데 불안을 안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너는 누나의 외출 준비를  묵묵히 바라보았어.

그리고 나갈 시간이 오면 노즈워크판에 가서 앉았지.

자 여기 간식을 좀 넣어주고 어서 외출해... 하듯이.

그리고 누나가 나가는 걸 아무렇지 않게 흘깃 보고는 노즈워크를 열심히 했어.

자 어서 나가요 나는 바빠요 하듯이.

누나가 나중에 홈캠으로 봤더니 똑똑한 너는 노즈워크해서 간식을 다 빼먹는데 5분도 걸리지 않더라...

그러고는 하루종일 현관에서 누나와 형을 기다리곤 했지...

너는 일부러 노즈워크는 열심히 해서 너를 두고 가는 누나의 마음을 조금은 덜 무겁해 해주었던 것같아.

그 노즈워크 판에 네 침냄새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까 열심히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아무 냄새도 남아 있지 않았어... 돌이야.... 너는 어쩌면 냄새조차 남기지 않고 가버렸니...


누나가 외출하기전에 노즈워크판에 앉아있곤 했던 너.




돌이야. 누나는 요즘 분리불안 상태야...

외출해서 돌아오지 않는 너를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네...


돌이야... 꿈에라도 살짝 와 주렴..

낮동안 한 생각이 꿈에 나타난다는 말은 다 거짓인거 같아

네 생각을 이리 많이해도 네가 꿈에 나타나지 않으니 말야...

네가 떠난 후 딱 한번 밖에 너는 누나 꿈에 나와주지 않았어.

꿈속에서 너는 집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녔지. 누나가 제대로 살고 있나 점검하듯이..

너는 누나가 잘있다고 여겼나보다... 그 후로 다신 꿈에 안나오는 걸 보면...


그런데 돌이야... 누나는 많이 힘드네... 네가 없는 시간들이...

누나에게도 너의 부재를 견딜 수 있는 노즈워크 같은 무언가가 필요한 걸까.....


오늘은 네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결국 또 넋두리 같은 글을 쓰고 말았네...

의젓했던 너처럼 될려면 한참 멀었지 누나...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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