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설쓰는 하루 Jun 19. 2024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마음.

앞부분만 보고 오해하지 않으셨음 합니다 ^ㅁ^

강아지는 보통 많이 살게 되면 수명이 15년은 된다는데 반려견이 없는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상상이 안돼, 상상하기도 힘들어 먼저 죽겠다는 마음을 가진 주인이 있다. 오늘의 제목은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마음』 이다.



내가 죽으면, 내 강아지는 다른 가족들에게 맡겨지겠지만(현재 나는 가족들과 살고 있다.) 죽는다는 소리 하는거, 정말 책임감 없는 소리라는 걸 잘안다. 그리고 난 강아지를 두고 쉽게 죽지 않을거라는 것도 안다.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마음' 은 그만큼 강아지를 무척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아지가 없으면 정말 살아갈 수도 없는 주인의 마음이라서 강아지 보다 먼저 죽고 싶었던 거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강아지가 내가 없는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꼴은 또 못보겠다. 


내가 폐쇄정신병동에서 입원을 하여 한달간 치료를 받고 있을 때의 일어났던 일화가 있다. 너무나도 얌전하고 사람물지도 않고, 산책만 좋아하던 식빵이가 어느날 중문을 열고 공동현관문까지 나갔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었다. 나는 그얘기를 듣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식빵이에게 강력한 목줄이 착용되어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식빵이는 나를 보고 싶어했을 것이고, 나와 매일 같이 하던 산책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폐쇄정신병동에 있을 땐 가족모두가 초상집에 있듯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았다. 안봐도 뻔하지... 강아지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원망하려고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식빵이는 나라는 존재가 필요했을거라는 거. 지금은 집안에서도 묶고 있던 목줄을 풀었다. (식빵이의 원래 산책 도구는 하네스이다.) 이 일화가 있고 나는,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는 마음' 같은 거 다 갖다 버려버렸다. 


내가 힘들다고, 내 강아지를 케어하지 못하고 먼저 죽는다는 건, 정말 책임감없는 행동이다. 그 후에 남은 생을 너무 힘들게 보내게 될 강아지를 배려조차 하지 않는 거기 때문에. 오늘 말하고 싶은 부분은 강아지를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너보다 먼저 죽을 수 있다는 마음' 을 얘기하는 건 이 문장 하나로 그런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강아지의 끝생을 보기 힘들어-너무사랑해서-죽고 싶은 마음을 갖는 주인도 있는데... 어떻게 된 게, 그런 사랑도 개나줘버린채 길바닥에 그냥 툭 버리고 가버릴 수 있는지. '너보다 먼저 죽을 수 있다는 마음' 이 그와 같은 마음인 것 같지만 서로 다른 마음이다. 내가 갖고 있었던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마음'은 강아지를 버리는 마음과는 정반대되는 마음이다.



유기견 보호센터에 있는 강아지들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 많아지고 있는 중이다. 강아지를 버리는 행동은 주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일 뿐더러, 내 자식이 최악의 상태와 최악의 순간들을 맞이하는 꼴이다.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마음' 은 사실 너를 살리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그렇게 하겠다, 라는 마음에서 왔다. 남겨질 강아지가 행복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강아지를 살리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나는 당연히 내가 죽을 것이다. 그리고 강아지가 최장 15년이란 삶 밖에 살지 못하지만, 만약 내가 죽어서 강아지의 삶이 늘어날 수 있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잖아.


그래서 '너보다 일찍 죽을 수 있다는 마음' 은 기여코 일어나지 않기에 나에게는 너무 괴로운 것이 되버린다. 


이토록, 이토록 강아지와의 하루하루가 소중해지는 오늘이다.



이전 01화 죽지마! 강아지, 나랑 같이 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